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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 - 최면가에 대하여

조회 수 6875 추천 수 1 2007.11.16 21:00:54
Milton Hyland Erickson(1901-1980)은 현대 심리치료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덜 알려진 것은 심리치료에 대한 정형화된 이론적 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의 저서들을 통해서 유명해졌다.

그의 제자들은 현재 그가 살았던 Arizona주의 Phoenix에 Milton Erickson 연구 재단을 만들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의 생애와 상담 분야에 대한 혁신적인 그의 공헌을 살펴보겠다.  

1. Erickson의 생애

Erickson은 1901년 12월 5일 Nevada주의 광산촌인 Aurum에서 세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Norway에서 이민을 와서 Chicago에 정착했으나, 그의 아버지인 Albert가 12세 때 돌아가셨다.
Albert는 생계유지를 위해 16세에 Wisconsin주의 한 농장의 일꾼으로 들어갔고, 농장주의 딸인 Erickson의 어머니 Clara Minor와 결혼했다. 그 후 Albert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 서부로 갔다.

Nevada주 Aurum에서 은광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신체 마비 증상이 나타나서 파산했다.
Erickson이 세살 때, 다시 Wisconsin주로 되돌아와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였고 Erickson을 포함하여 9명의 자녀를 양육했다.

  Erickson은 Wisconsin주의 Lowell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집에서 4.5마일 떨어진 Wishfield에 있는 고등학교를 매일 걸어서 다녔다.
그는 8세 때부터 소젖을 짜는 일로 시작해서 여름 방학 때는 농장 일을 도왔고, 1919년 6월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고학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 신체장애

  Erickson이 17세 되던 해 전신이 마비되었다.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신체 기능은 눈과 귀뿐이었다.
아주 힘들게 간신히 말을 할 수는 있었으나 거의 모든 신체 기능은 마비되었다.
그는 마비가 되던 날 의사들이 그의 어머니에게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끔찍한 사실에 대한 그의 분노는 오히려 살고자 하는 그의 욕구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의욕이 치솟아 올랐다. 그래서 그는 하루만 더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는 목표를 세웠다.
그의 어머니가 의사와 이야기를 마치고 그의 방에 들어왔을 때 그는 어머니에게 가구배치를 특별한 방식으로 하도록 부탁했다.

가구가 재배치되었을 때, 그는 서쪽 창을 통해 밖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한번 더 해가 지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그는 마음속에서 나무들, 울타리, 돌 등의 윤곽을 그려 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지는 해를 꼭 보리라고 다짐하면서 그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회복의 과정에 요구되는 것은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뿐만 아니라 뛰어난 관찰 기술과 어느 정도의 행운이었다.

  전신이 마비된 Erickson이 흔들의자에 앉혀졌을 때 우연하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농장을 내려다보면서 움직이기를 절실히 바랐다.
그리고 그의 강한 소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단지 소망만으로도 마비되었던 몸을 결국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미세한 움직임을 확장시켜 1년 만에 지팡이를 짚고 걷게 되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내담자들의 인식하거나 실제적인 한계도 극복될 수 있다는 Erickson의 신념을 형성하는데 강력한 힘이 되었다.
물론 그는 살아서 그 자신이 가진 많은 한계들을 극복하였고, 수많은 환자들이 가진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왔다.

  그는 선천적으로 색맹이었고, 음치였으며, 난독증까지 있었다.
이러한 기능적인 장애에 대처했던 그의 경험은 어떤 개인이 세상을 보는 관점의 독특성을 부각시켰다.
예를 들면, 그는 피아니스트가 사용하는 건반을 두드리는 터치(touch)의 정도로 피아니스트의 질을 구별하는 것을 배웠다.
사실 그는 음조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피아노의 음으로 피아노 연주자를 평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장애가 그의 강점으로 활용되었다. 그는 표현하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Haley (1985c)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음치이기 때문에 나는 음의 굴곡 즉, 억양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네. 이는 그 사람의 말의 내용에 내가 덜 방해를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하거든. 행동의 많은 양상들이 사람이 말하는 내용보다는 말하는 방식에 반영되고 있지.  

  2) 회복 과정

  자세한 관찰과 주의집중은 Erickson의 회복에 결정적이었다.
그는 막내 여동생이 기어 다니고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걸음걸이와 균형을 잡는 방법을 재학습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그는 전신을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육체적인 마비에서 오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자신에게 해리 현상을 적용했고, 의식 외에 존재하는 마음속에 저장된 무의식적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최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회복 과정은 후에 상담자로서 그의 능력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무의식적인 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 다른 중요한 성과는 습관적으로 소홀히 해왔던 정보로부터 자원을 이끌어내는 능력의 개발이었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워 누군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대학 1학년을 마친 후에 Erickson은 건강을 위해서 야외에서 다리를 사용할 수 없어도 운동을 해보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다.
그는 6월 14일에서 9월 1일까지 5m 정도의 카누로 Madison 호수에서 시작하여 O'hara강, 하류의 Rock강을 통과하여 Mississippi강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Illinois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Hennipen 운하를 거쳐 Madison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2달러 32센트의 돈을 가지고 1,200마일을 여행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도록 주변 상황을 조정했다.
그는 다른 고깃배 가까이 노를 저어갔다.
그는 크게 몸이 그을렸고 매듭이 있는 손수건을 머리에 둘러썼기 때문에 근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은 그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어부들이 궁금해 하면, 그는 자신이 Wisconsin 대학교의 의예과 학생인데 건강을 위해서 카누 여행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부들은 낚시는 어땠냐고 물어보면 별로 소득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 거의 틀림없이 어부들은 이야기를 다 마치고 헤어질 때 그에게 고기를 주곤 했다.
그는 고기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에 어부들은 메기를 주려고 했으나 그는 항상 사양했다. 왜냐하면 메기는 비싼 것으로 그들의 생계용이었다.
그런데 그가 메기를 사양하면 어부들은 Mississippi 농어를 두 세배나 더 주곤 하였다.  

  그는 스스로의 노력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카누 여행을 마쳤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여행을 끝낼 무렵 그는 일마일 정도 수영을 할 수 있었으며, 새벽부터 어두울 때까지 노를 저어 4마일 정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훗날 storytelling을 수단으로 해서 어떻게 낚시꾼으로부터 밥을 얻어먹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매우 즐거워하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복잡한 조작들을 배우면서, 그는 인간이 선천적인 가능성에 대한 희망적인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전신마비를 극복한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많은 문제가 있는 내담자들에게도 적절한 치료적 맥락이 주어진다면, 생존하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전개하고, 확장하며,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상담 전략과 기법들은 낙관적인 기본 구조 위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개발해 낸 기술들을 내담자들의 변화에 활용했다.
그는 상황을 독특하게 지각하는 내담자의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진심으로 호기심을 가졌다.
따라서 대단히 유사한 문제를 가진 두 명의 내담자에 대한 상담도 그들의 독특한 성격과 삶의 상황들로 인하여 근본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3) 대학 이후의 삶

  Erickson은 1920년 Wisconsin 주립대학에 진학하여 의학을 공부하였다. 대학생활 중에 그는 Clark L. Hull의 도움으로 최면에 대하여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Colorado General Hospital에서 일반 인턴 과정을 마쳤으며, Colorado Psychopathic Hospital에서 정신과 인턴 과정을 이수했고, 1928년 의학 박사학위와 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30년부터 34년까지 Massachusetts주의 Worcester State Hospital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했다.
이 기간동안 그는 11개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는 최면에 대하여 최초로 발표한 ‘실험적 최면의 부정적 효과의 가능성’이라는 논문이 있다.  

  1935년부터 39년까지 Michigan주의 Wayne County General Hospital에서 정신과 과장으로 일하면서 Wayne 대학에서 강의했다.
1939년부터 48년까지 Detroit에 있는 Wayne 대학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복지학과 학생들과 Michigan 주립대학의 임상심리전공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25년 Erickson은 Helen Hutton과 결혼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세 자녀를 두었으나 1935년 이혼했다.
이 결혼생활이 실패로 끝난 이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두 번째 부인인 Elizabeth는 남편과 공동 논문을 집필하는 등, 여러 가지 연구 활동을 함께 했다.
그녀는 Wayne 대학교의 심리학과 학생 겸 실험 조교로 있을 때인 1935년에 남편을 만났고 1936년에 결혼했다.
그들은 결혼 후에 5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전처소생의 자녀를 합하여 모두 8명의 자녀를 양육했다.

  내담자들을 독특한 개인으로 보는 그의 관점은 인류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고, 유명한 인류학자인 Margaret Mead와 1938년부터 교류하였다.
Mead는 발리 섬의 무희들이 최면 상태에서 춤을 추는 것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최면 전문가인 Erickson의 도움이 필요했다.

2차 세계대전동안 Gregory Bateson과 그의 아내인 Mead는 세계문화 연구소(Center for Intercultural Studies)를 설립했고, 횡문화 연구에 대한 정보를 미국 국방부에 제공했다.
이 연구소에서 Erickson은 일본인들에게 최면을 걸어서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등, 문화적 차이를 분석하고 연구할 기회를 가졌다.

이러한 인연으로 2차 세계 대전 후에 10년간 Bateson이 주도하는 독일인과 일본인의 성격과 나치의 선동적인 선전 연구에 Erickson도 간접적으로 참여했고, 내담자들의 문화적 배경을 중요히 여기게 되었다.    

  1947년 다시 마비 현상이 왔고, 48년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Arizona주의 Phoenix로 이사했다. Arizona 주립 정신병원 임상과장으로 1년 동안 일했으나, 그 후 30년은 제자들과 함께 최면과 심리치료에 대한 임상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1957년 Society for Clinical and Experimental Hypnosis의 초대회장을 맡았고, 1958년부터 68년까지 The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Hypnosis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그의 가족은 1949년부터 70년까지 Phoenix 시내의 West Cypress 32가에 살았다. 그는 대단히 독특한 환경에서 심리치료를 하였다.
그는 소박한 사람이었고 8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침실이 세 개 딸린 작은 벽돌집에 살았다.

대기실은 바로 거실이었기에 내담자들은 늘 가족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책상과 몇 개의 의자, 책장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작은 사무실에서 내담자들을 만났다.
이러한 환경은 독특한 가족상담의 기회를 제공했다.
내담자들은 대기실에 있는 동안 인형에 옷을 입혀 주는 등, 자녀들을 도와주며 함께 놀았다.
이러한 경험들은 내담자들에게 가족의 중요성을 상기시켰고, 고립감을 없애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70년 Erickson은 실제 임상에서 은퇴하였고, Hayward 가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3번째 직업(첫 번째는 연구가, 두 번째는 임상가)인 교사의 역할을 수행했다.
1980년 죽을 때까지, 그는 자신의 작은 집에서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제자들에게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때의 연구물들은 후에 제자들에 의해서 출판되었다(Rossi, 1980a, b, c, d; Zeig, 1980; Gordon과 Myers-Anderson; 1981; Lankton과 Lankton, 1983; Gilligan, 1986; O'Hanlon, 1987).

  1979년 그의 제자들은 Phoenix에 Erickson 재단이 설립했고, 지금까지 그의 독특한 접근 방법에 관심을 가진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가 죽은 해인 1980년 12월에 제1차 International Congress on Ericksonian approaches to Hypnosis and Psychotherapy가 개최되었으며, 20여 개국의 2,00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75개가 넘는 Erickson 연구소가 있으며 Erickson과 직접 관련된 100여권이 넘는 저서들이 출판되었다.

  2. 주요 개념

  Erickson은 상담이 내담자들을 성격 형성 이론이나 상담이론에 꿰어 맞추는 정형화된 접근이 아니라, 고유한 개인으로서 개별화해야 한다는 것을 대단히 강조했다(Zeig, 1980).
상담의 개별화는 상담자가 내담자들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상황에 따라 창의적으로 대처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그는 직접 인간관이나 이론적인 틀을 만들지 않았다.

  Gilligan과 Price(1987)는 내담자들을 병리적인 진단의 범주 속에 왜곡시키는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경험적인 변형(experiential deframing)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Erickson은 치료적인 의사소통이 이론적인 일반화나 통계적인 가능성이 아닌 내담자의 지금의 자기표현(신념, 행동, 동기, 증상)과 같은 실질적인 패턴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자주 강조했다.

이것은 사실 임상적인 무지의 상황에서 상담을 시작하는 상담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실질적인 패턴에 초점을 두는 것은 내담자들이 표현하는 ‘본성’의 개별화된 모델이며 상담은 이러한 모델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상담자들은 자신들의 모델을 버리는 경험적인 변형의 상태를 개발해야 하며, 새로운 내담자의 본성을 배우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모든 내담자들은 배우고 발견하며, 모든 자극에 대하여 새로운 패턴으로 반응할 기회들을 활용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정신적 외상에서 단순하게 살아남은 존재에서부터 성공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변화될 수 있다.

증상은 그들이 지나온 나날들에 대한 이정표이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정표는 아니다.

  개입의 원리에 대한 정형화된 Erickson의 이론은 없지만, 그의 논문이나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나타난 주요 개념들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내담자의 준거 틀에 맞추어 창의적으로 상담하는 것 2) 작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내담자의 행동, 동기, 이해력을 통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 3) 내담자의 강점과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Zeig, 1980).

  1) 내담자의 준거 틀에 맞추어 창의적으로 상담하기

  우리에게는 자신들이 경험하고 지각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범주들의 집합체인 준거 틀이 있다.
이러한 준거 틀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선택한 것의 의미와 중요성을 결정하며, 어떤 방법으로 관리하거나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다시 선택한다.  

  Erickson은 내담자가 가진 준거 틀에 근거한 상담의 개별화와 창의적인 사고나 방법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Lankton과 Lankton, 1983). “나는 각각의 내담자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이론과 새로운 접근을 만들어 낸다.”

모든 개인은 독특한 맥락 속에서 존재하므로 상담은 특정한 상황의 필요성에 적용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Haley, 1993).  

  Erickson은 규칙적으로 제자들에게 다양한 심리적인 수수께끼를 제시하곤 했다. 예를 들면, 제자나 내담자들에게 숫자 710을 읽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아보라고 요구했다.
보통 대답은 701, 170, 107, 071, 017와 같은 숫자로 산출된 것들이었다. 그러면 그는 그 숫자를 거꾸로 돌려서 'OIL'이라는 단어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인식과 새로운 참조의 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사하게 Erickson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곤 했다. “이 상담실에서 건너편에 있는 방으로 갈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찾아보세요.” 제자들은 보통 다양하게 걸어가는 방법(걸어가기, 뛰어가기, 기어가기)들을 말했다.

제자들이 가능한 모든 해결책들을 찾아냈을 때, Erickson은 이 방을 나가서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건너 방으로 들어가기, 사다리와 같은 중간 매개물을 놓고 그 위로 가는 다양한 방법, 유리 창문을 통해서 가는 것 등을 덧붙이곤 했다(Rosen, 1982).

  문제 해결의 다양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환경이나 신체적인 한계를 알 필요는 있지만, 내담자들이 가정하는 해결의 한계는 그들의 준거 틀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보는 다양한 참조의 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Erickson은 인간의 문제에 대한 무한에 가까운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제공하려 했다.

  그는 대부분의 상담이론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 꾸준히 도전하면서 상담 전략이 인간 행동에 대한 가설적 이론의 틀에 내담자를 끼워 맞추려 하기보다는 개인의 독특함에 알맞게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Zeig, 1985a).

  한 엄마가 Erickson을 찾아왔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14된 딸아이가 발이 너무 커서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놀려대기 때문에 학교에도 안 가고 외출도 안 한다고 그에게 호소했다.

딸은 자기 발의 문제에 대하여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고, 의사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아무리 네 발이 큰 게 아니라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고, 아이는 점점 더 은둔 생활을 하게 되었다.

  Erickson은 엄마에게 다음 날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누워서, 아이에게 병 때문에 의사가 방문 온다는 것을 알리라고 조언했다. 다음 날 Erickson이 방문했을 때,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Erickson은 엄마를 조심스럽게 진찰했다. 아이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수건을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고, 또 다시 필요한 일이 있을지 모르므로 옆에 있어 줄 것을 요청했다. 아이는 엄마의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아이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아이는 약간 살이 찌기는 했지만 발이 큰 것은 아니었다.

  Erickson은 몸을 낮추어서 엄마를 관찰한 후에 천천히 일어서면서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치다가 뒤에 있는 아이의 발을 세게 밟았다. 그리고는 화를 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발이 너무 작아서 내가 네 발을 밟았잖아. 만약 네 발이 컸다면 내가 네 발을 보았을 것이고 그럼 내가 안 밟았을 텐데.” 아이는 혼란스러워 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Erickson은 엄마에게 필요한 약을 처방해주고는 아이에게 약국에 다녀오도록 시켰다.

  그날 저녁 아이는 영화 구경을 가도 되는지를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수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다음부터 그녀는 학교와 교회에도 갔으며, 3개월간의 은둔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Haley, 1985c: pp. 12-15).

  상담에 관한 접근 방법들을 개발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발달과정에서 임상 절차를 안내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상당한 노력들을 기울인다. 비록 임상가들은 자신이 접근하는 이론에 정통해야 하지만, 일단 하나의 틀로 개발된 임상적인 중재들은 상당히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2) 협력 체계 구축  

  Erickson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상호작용과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강조했다. 그에게 내담자들의 정신역동이나 가족역동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그는 내담자들이 처한 전후 상황과 그들의 독특한 개성에 따른 다양한 의사소통을 중요하게 보았다(Schmidt와 Trenkle, 1985).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심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같은 배경을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하는 내담자는 없다. 따라서 지적이나 감정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내담자들을 만날 때, 명심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그들의 사고를 변화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담자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가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상황을 점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Zeig, 1980: p. 336).        

  Erickson은 협력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것은 일단 받아들이고 활용하자.”라는 원칙을 적용했다. 이를 위해서 상담자는 내담자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경험하는 것을 느끼고, 보고, 들으면서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협력체계는 내담자들의 어떤 반응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상담자가 앞으로 이 반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찾아 나설 때, 유지된다. 내담자들이 보여주는 모든 표현을 협조적인 것으로 상담자가 정의할 수 있다면 저항이 어디에 있겠는가? 비순응적인 행동을 개인의 자산으로 재창조할 수 있을 때, 결국 행동과 연결되어 있는 감정이나 사고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Yapko, 1992).

  상담실에서도 계속 걸어 다니는 내담자가 있었다.
Erickson은 상담을 시작하기 위해 그를 의자에 앉히거나 이완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렇게 하면 내담자의 저항 의지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상담이 종결될 지도 모를 텐데,  Erickson은 그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그의 보행에 일치하여 같이 걸었다.

그리고는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아주 간단하고 직접적인 암시를 해나갔다. 내담자와 함께 충분히 걷고 난 다음, 그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의자에 앉고 싶어질 수 있다는 암시를 끼워 넣었다. 내담자는 앉게 되었고 상담을 할 수 있는 trance 상태가 되었다(Haley, 1973: p. 23).

  Erickson은 내담자들을 모두 자기 삶의 진정한 전문가로 보았다(Zeig, 1992). 상담자가 내담자들이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들의 준거 틀에 따라 상담할 때, 내담자들은 변화에 협력하며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족, 친구, 다른 사람들을 규합하도록 도울 수 있다.
아래의 사례는 Erickson이 부모의 지나친 관여에 저항하는 소년과 어떻게 협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Erickson에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중학교 1학년 소년이 의뢰되었다. 부모는 아들로 하여금 글을 읽게 하려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부모가 애쓸수록 소년은 거부했다.
지금까지 소년의 여름 방학은 항상 글을 읽게 하려는 가정교사와 씨름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여름 방학은 Erickson에게 보내졌다.

  Erickson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나는 네 부모님이 좀 완고하다고 생각하거든. 너는 네가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도 네가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이제 너와 나 사이에 그 문제는 잊어버리자. 하지만 나는 너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으면 해. 그건 물론 네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지. 자, 무엇을 가장 좋아하니?” 아이가 말했다, “여름마다 나는 아빠와 함께 낚시를 가고 싶었어요.”

  Erickson은 아빠가 어디로 낚시를 가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빠가 경찰 공무원인데 Colorado, Washington, California, 심지어는 Alaska까지 낚시를 간다는 것이었다. 미국 서부 전역의 해안가를 따라 두루 다녔다. Erickson은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 마을들의 이름을 아이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둘은 미국 서부 해안가의 지도를 만들면서, 좋은 낚시터가 되는 마을들의 위치를 배치했다. 둘은 지도를 읽지 않고 쳐다보았다.

  Erickson이 어떤 마을의 위치를 잘못 찾으면 아이는 정확하게 바로 잡았다. Colorado 주의 Springs라는 마을을 California 주에서 찾으면 아이는 Colorado 주에서 그 마을의 정확한 위치를 바로 찾았다. 읽지는 못했으나 바로 잡을 수는 있었다.
아이는 관심이 있는 마을의 위치를 급속도로 빠르게 학습했다. 그 이름을 읽지는 못했다. 둘은 지도를 보고 낚시를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기꺼이 상담실에 왔고, 다음은 물고기와 다양한 종류의 미끼들에 대한 토론을 했다. 둘은 또한 동물도감을 펼쳐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을 보았다.

  8월이 끝날 무렵, Erickson은 아이에게 제안했다.
“이제 개학하면, 읽기 시험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거야.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네가 해낼 수 있는지 무척 걱정하고 있겠지. 그래서 말인데, 그분들에게 네가 당한 만큼 갚아주고 내가 참 잘못 했구나 라고 반성하게 하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 소년은 "내가 책을 읽으면 돼요."라고 대답했다. "
그래, 네가 더듬거리면서라도 읽을 수 있게 되면 그분들은 놀라서 기절할거야. 그렇게 해 볼 생각은 있니?” 아이는 괜찮은 놀려먹기라고 생각하고서는 바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Metcalf, 1995: pp. 106-107).

  이 사례에서 Erickson은 부모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기 위해서 증상을 유지하려는 소년의 동기를 활용했다. 변화의 시기는 내담자들이 결정한다. 상담자는 어떤 충고나 제안을 하기 전에 내담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하여 상담자는 내담자들에게 도전하지 않고 협력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내담자들의 협력을 얻어내는 또 하나의 접근은 내담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Erickson(1976)은 최면 상태를 매개로 내담자를 상담했다.

왜냐하면 최면 상태에서는 일상적인 맥락에서부터 행동이 분리되어 의식적인 마음이 무익하게 방해하는 것을 멈추게 되므로, 내담자들은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되고, 상담자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을 잊고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상태로 유도하는 것은 효과적으로 관계를 맺는 적극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이다.

  3) 자원 활용 전략

  Erickson은 많은 내담자들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끊임없이 학습으로 축적된 기술과 자원을 가지고 있으나 단지 그것을 알지 못한 체 지낸다고 가정했다(Grodner, 1986). 이러한 전제는 자신들의 자원을 활용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모든 해결책은 자신 안에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더 해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O'Hanlon, 1987).

  그는 많은 내담자들에게 Arizona에 있는 Squaw Peak에 등산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등산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담자들이 그들 자신의 의미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고, 등산은 바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의미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믿었다(Erickson, 2002).

  활용 전략의 원리는 내담자들이 무엇을, 언제, 어떻게 제시하건 그것들을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내담자들과 그들의 세계에 의해서 제시되는 모든 것들을 활용한다는 것은 상담자의 접근이 그들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다(Erickson과 Rossi, 1981). 내담자들이 보여주거나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귀중한 자원이므로 어떠한 것도 헛되게 사용할 필요가 없다.

  Erickson은 병리적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지 않고서도 내담자들의 경험을 체계화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관계를 형성하면서 개개인의 독특한 삶의 패턴과 조화를 이루는 그들의 문제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강점과 자원을 조심스럽게 살폈다(Minuchin과 Fishman, 1981).

  그에게 증상은 병리의 양상이기보다는 무의식에서 나오는 하나의 메시지로써 관찰되고 활용될 수 있는 차단된 자원의 결과로 나타나는 파생물이었다(Mills, 2001). 따라서 그는 치료적 개입이 내담자들의 신념과 행동에서의 경직성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며, 그들 스스로 잠재적 자원을 발견하여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것을 상담과정으로 보았다(Rossi, 1980d).  

Erickson이 한번은 Milwaukee에 강연을 가게 되었는데 그의 친구가 부탁하기를, 자기 고모 한 분이 그 곳에 살고 있는데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꼭 한번 만나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 부인은 많은 유산을 받아서 대저택에 살았다. 그러나 결혼을 한 일이 없이 혼자서 살았고, 이제 60대에 들어서서 가까운 친척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난 뒤였다. 심한 관절염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으므로 사회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었으며 조카에게 죽고 싶다는 전화를 자주 했다.

  강연을 마친 후에 Erickson은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하여 택시를 타고 그 부인을 찾아갔다. 조카로부터 그가 온다는 연락을 받은 부인은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에서 그를 맞이한 부인은 대저택을 구경시켰다. 그 저택은 부인이 휠체어를 몰고 다닐 수 있도록 개조되었지만 거의 80년 동안 변화된 것이 없어 보였다. 가구들이며 장식들은 고색창연했고 먼지 냄새를 풍겼다. 집안의 모든 커튼은 드리워져 있어서 집안이 우울증에 빠지기 딱 알맞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그 부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곳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집 옆에 위치한 온실이었다. 이 온실은 그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으며 즐거움이었다. 부인은 이 온실에 있는 화초들을 손질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녀는 아주 자랑스럽게 마지막 보물을 보여주었는데 잘 손질된 제비꽃들이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Erickson은 이 부인이 무척 외롭다는 것을 알았다. 그전에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그 지역 교회에서 대단히 활동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으므로 고작 일요일에만 교회에 나갔다. 또한 그녀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Erickson은 조카가 그녀의 우울증에 대하여 대단히 걱정한다는 말을 했다. 그 부인도 그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Erickson은 우울증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이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지 못하는 괴로움이 문제였다. 이 설명에 부인은 당황했고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Erickson은 보충 설명을 하였다.

  “당신은 부유하고, 시간도 있으며, 아름다운 화초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좋은 꽃들을 그냥 낭비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장 최근에 나오는 교회 소식지를 잘 살펴보세요. 누구네 집에 아이가 태어났고, 누가 병들고, 누가 졸업하고, 약혼, 결혼, 장례, 모든 길흉사가 거기에 쓰여 있을 것입니다. 잘 다듬어진 제비꽃 다발을 만들고 예쁘게 포장하세요. 그리고는 그 꽃들을 길흉사가 있는 집에 선물로 보내세요. 그러면 상황이 좋아질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기독교인으로서 책임감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고 대답했다. 10년 후 Milwaukee 지방신문에 다음과 같은 제목이 있는 신문기사가 크게 났다. “제비꽃 여왕 운명하시다. 수천 명이 애도함.” 이 제목이 그 후 이 부인이 죽을 때까지 지역사회에 봉사한 삶의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Gordon과 Myers-Anderson, 1981: pp. 124-125).

  Erickson은 화초에 쏟았던 그녀의 관심과 기술이 외로움과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았다. 자기 자신의 자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부인은 이제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녀는 지역 사회 봉사에 더 큰 관심을 가질 것이며 봉사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점과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녀는 자기 스스로 자기 행동을 타당화 하는 새로운 자원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간다. 그리하여 자기 이미지를 변화시켰던 최초의 자원이 없어진다 해도(예를 들면, 제비꽃이 없어도), 그녀는 스스로 만든 새로운 자원들에 근거하여 여전히 봉사 활동에 열중하게 되는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삶에서의 제비꽃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3. 주요 상담이론과의 차이점
  심리치료 분야에 대한 Erickson의 공헌을 알기 위해서는 1930년대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상담의 주요 이론은 Freud의 정신분석이었고, 행동주의 이론과 제3심리학이라고 일컫는 인본주의 심리학이 태동기에 있었다. Erickson의 탈이론적이고 전략적인 경향성은 그 당시 주를 이루던 상담 이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었다.

  그의 치료적 개입은 전통적인 문제 중심의 상담과 다르고 단기적이며 효율적이다. 이러한 개입들은 성격이나 상담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담자들과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접근이다. 따라서 그는 상담을 상담자의 개입에 관계없이, 내담자들이 자신의 내적 치유력을 발견하여 해결책으로 활용하도록 돕는 것으로 보았다(Erickson, 2002). Haley(1993)는 Erickson의 상담 스타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Erickson의 상담 스타일은 내담자들의 무의식 과정을 통찰하는 접근도 아니고, 그들의 대인관계 문제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도 아니며, 전이를 해석하는 것도, 내담자들의 동기를 탐색하거나, 단순히 재조건화 하는 접근도 아니다. 그의 변화 이론은 보다 복잡하다. 그의 상담 스타일은 내담자들의 의식 밖에 있는 상담자의 영향력에 근거하여 행동변화를 가져오는 제안의 제공이나 은유적인 의사소통을 강조한다(p. 39).    

  Erickson의 상담 사례들 중에 어떤 것들은 대단히 마술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가 내담자들에게 명백하거나 기대된 어떤 방식이 아니고, 문제해결에 대한 간접적인 방식을 소개함으로써 내담자 자신이 직접 문제 해결을 해나가도록 이끄는 상담전략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내담자가 이미 명백하게 관계없는 어떤 것들 사이에서 연상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상담 장면에서 은유를 적용하는 것을 적합하게 한다. 그는 심한 정신적 질환을 겪는 내담자들일수록 직접적인 의사소통에 저항하므로 그들과의 의사소통은 간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내담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다루는 데 저항할수록, 그는 은유적인 접근을 적용하려고 했다(Rosen, 1982).      
    

  1) 정신분석과의 차이점

  전통적인 정신분석이론은 증상의 원인 분석에 강조점을 두면서 현재의 문제를 초래한 아동기의 발달 과정에서 고착된 원인을 분석하고, 증상이 상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고 해석하며, 실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통찰하도록 돕는, 근본적으로 인과적인 모델이다. 이에 반해 Erickson은 인간 성격이 유전적으로 혹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고 믿는 성격이론가들과는 달리, 늘 변화한다는 실용적인 입장을 취했다(O'Hanlon, 1987).

  초기 정신분석 접근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일시 드러난 증상이 치료되더라도 다른 대체된 증상으로 재발될 수 있다는 관점을 유지했다. 반면에 Erickson은 내담자들이 상담실에 가져 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그 해결 능력이 일반화되어 눈사태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믿었다(Haley, 1993). 하나의 문제 해결은 다른 문제들을 제압할 수 있는 자원을 결집시킨다는 것이다. 임상가들은 이것을 파급효과(ripple effect)라고 부른다.

  Erickson은 의과대학에서 정신분석이론을 공부하였고 또한 그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임상 경험을 통해서 그는 해석적으로 끌어낸 통찰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정신분석 접근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행동 기능의 주요한 결정인자가 무의식의 구조라는 Freud의 공식은 Erickson이 내담자들을 이해하고 치료 기제로서 무의식을 활용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Freud는 무의식이 고통을 회피하려는 원리에 근거해서 작동하므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억압하고 위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의식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면 괴롭기 때문에 상징화된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의식을 의식화시키거나 상징들을 해석하면 증상에서 벗어난다는 관점을 유지했다.

  Erickson도 Freud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을 중요하게 보았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을 단순히 탐색되어야 하거나 정상을 회복하는 통찰을 얻기 위하여 두드리는 옛 기억의 창고로 여기지 않았다. Erickson의 입장에서 통찰의 중요한 기능은 내담자들이 과거의 사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도록 돕는 것이었다(Zeig와 Munion, 1999).

  그는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는 노력이나 해석하는 대신에 무의식적인 마음의 기제를 활용하여 상징을 전환시키거나 몰입 상태에서 문제의 원인보다는 해결책을 찾는다면, 상징 속에 응고되어 있는 모든 경험들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Robles, 2001). Erickson의 무의식에 대한 관점은 Jung과 유사하다. Jung은 Freud의 주장과 달리 무의식을 의식과 더불어 정신의 전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 요소로 보고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Boa, 1994).

  무의식은 의식이 폐기해버린 것들을 담은 쓰레기통이 아니라 의식을 거듭나게 할 수 있는 모태이다. 그래서 무의식은 의식이 외부 세계에 적응하느라고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버린 것들을 의식에 전해주며 정신적인 균형을 잡아주고 정신의 전체성을 이루게 한다. 무의식의 활동은 의식의 작용을 보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의식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무시당하고 사라질 때마다 무의식에서는 그것을 보상하려는 작용이 생겨난다(p. 15).

  Erickson은 무의식을 변화에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자원으로 보았다. 그는 상담 과정에 무의식을 끌어들이는 새롭고 독특한 방식, 직접 문제들을 다루기보다는 내담자들에게 적합한 간접적인 제안들: 새로운 관점, 자원, 은유적인 이야기, 문제가 해결된 미래에 대한 탐색, 문제 행동 패턴을 약간 변화하기 등을 강조했다(Robles, 1997).

  2) 인류학적인 접근(행동수정과의 차이점)

  Erickson은 증상을 기저의 문제 또는 과거에 겪은 외상적인 경험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는 습관적인 패턴에 기초한 내담자들이 경직되게 발전시키는 경향성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미성숙한 문제 행동 패턴을 성숙한 행동 패턴으로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었다(Rossi와 Ryan, 1985).

  그러나 그는 내담자가 가진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는 인류학적인 접근을 주장했으므로 행동수정적인 접근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인류학은 인간과 인간의 기원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Erickson은 인류학을 '판단을 유보한 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정의했다(Zeig, 1980). 이러한 접근은 인내심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운다. 내담자들의 반응이나 사고방식에 진정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도 가능하게 된다.

  그는 Bateson과 Mead의 영향을 받아 내담자들의 삶 속에 내재화된 패턴이 그들이 속한 사회 규범과 불일치 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졌다. 이러한 접근은 내담자들의 단순한 행동들(behaviors)이 아닌 문화적인 상황 속에 위치한 행위들(actions)을 중요시한다(Bruner, 1980; Erickson-Klein, 1991).

  행동수정에서는 자극과 반응이라는 관점에서 증상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Erickson은 증상을 사회적 상황에서 생긴 어려움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간주했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을 이해하려고 했다(Madanes, 1991). 문화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상담자들은 문화권에 따라 각기 다른 이론과 적용기법을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Frykman(1985)은 개인적인 만남에서 Erickson에게 노르웨이인의 혈통이 그의 심리치료 접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질문했다. Erickson은 자신이 미국 인디언의 피도 섞여있다고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백인과 인디언들이 사냥하는 방법에서의 차이를 알고 있는가? 백인들은 숲의 한 가장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 반대편에 한두 명의 사냥꾼을 배치시키지. 많은 사람들이 숲을 건너가면서 나무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거나 북을 치면서 짐승들을 총을 겨누고 있는 사냥꾼 쪽으로 몰아가거든. 그들은 여러 가지 덫, 사냥개들, 망원경 등 인위적인 도구를 많이 사용해야 하네. 하지만 인디언 사냥꾼은 홀로 조용히 숲 가운데로 나가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짐승이 자기 쪽으로 오기를 기다리거든. 자, 나는 이런 방법으로 심리치료를 하네(p. 185).        

  우리는 관계 속에 있는 환경을 고려하면서 개인의 사고, 감정, 행동을 유지한다. 환경과의 대립과 갈등은 결국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Erickson의 문제 해결은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접근과는 다르게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의 적절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Erickson은 인위적인 가설로 인간의 정신병리를 요란스럽게 설명하는 서양의 심리치료 이론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Zeig, 1980). 그는 비정상적인 내담자들을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마치 외과 수술을 하듯이 병리적인 부분을 파고들거나, 자극과 반응이라는 조작적인 접근이 아니라, 오히려 한의학처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덜 인위적인 상담을 강조했고 내담자를 쫒아가는 접근을 시도했다. Erickso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너무 많은 상담자들이 내담자들을 심리치료라는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무엇을 주문해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당신이 주문하셔야 합니다.”라고 요구한다(Murphy와 Duncan, 1997: p. 85).  

  3) 인본주의와의 차이점

  Erickson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내담자들의 능력, 강점, 심지어 그들이 가진 병리적인 문제나 준거 틀까지도 자원으로 존중했다는 면에서 대단히 인간 중심적이다. 그러나 그의 접근은 근본적으로 Carl Rogers의 내담자 중심 접근과는 다르다.

  초기에 Rogers는 만약 상담자가 진실하고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며 내담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치유 과정의 모든 필요한 조건은 갖추어진 것이라고 믿었다(Rogers, 1941). 그는 상담자가 인위적인 기법을 쓰지 않아도 내담자들이 과정을 이끌도록 돕는다면, 변화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본주의 상담자들은 주도권을 잡는 것을 피하고 내담자들이 무언가를 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훈련되었다.

  Erickson도 내담자들을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Rogers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 비록 그의 기법이 마술사의 작업처럼 마술적이고 평범하지 않아도 비디오에 수록된 그의 상담 과정은 따뜻한 목소리와 시적인 묘사로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마법사라기보다는 지혜롭고 인정을 베푸는 포근한 옆집 아저씨에 더 가깝다(Minuchin과 Fishman, 1981).    

  하지만 엄밀히 비교해서 그는 인본주의 상담자보다 능동적이고 전략적이다. 그는 어떤 특정한 이론이 아니라 내담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접근을 하였다. Erickson은 내담자 중심 접근에서 요구되는 긍정적인 관심, 공감이나 진실성과 같은 상담자의 태도와 더불어 내담자의 준거 틀에 따라가면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보다 적극적인 상담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내담자들이 말을 할 때, 상담자는 모든 가능성을 들어야 한다. 보다 더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며, 상담자의 사고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하고, Carl Rogers의 교재, 4쪽 3번째 줄에 나오는 접근 방법을 모든 내담자들에게 적용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Rosen, 1982: p. 182).    

  인본주의자들은 상담실 안에서의 치료적 분위기를 중요시 여겼다. Erickson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상담실 밖에서 내담자들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적인 치유 과정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변화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어떤 이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주변의 의견이나 정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일어난다고 확신했다.

  또한 Erickson은 작은 변화가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상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상담실 밖에서 실행할 수 있는 실험 과제를 제시하거나 역설적인 제안, 역경을 부과하는 등의 능동적인 상담자 역할을 강조했다.

  4) Erickson의 강조점

  Erickson의 접근은 강점 활용이고, 내담자 중심적이며, 변화 지향적이다. 하지만 그는 이론적인 체계를 세워 자신의 접근을 공식화하는 것을 거부했다. 또한 다른 상담자들이 자신의 접근법과 기법들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들만의 고유한 기법을 창의적으로 만들라고 충고했다. “나의 목소리나 억양을 모방하려고 하지 마세요. 오로지 여러분 자신의 것을 창조해 내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자연스러운 자기(self)가 되세요(Rossi, 1980d: p. 70).” 하지만 상담에 대한 그의 실제적인 생각은 아래 6가지의 원리로 정리할 수 있다(Zeig와 Munion, 1999: pp. 25-26).

  ◇ 부정적인 내담자들의 사고, 감정, 행동 이면에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긍정적인 요소가       무의식 속에 있으므로, 무의식은 상담 과정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 문제는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보다는 내담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요구되는 변화에        적응하려는 비효율적인 시도의 결과이다.

  ◇ 상담자는 상담 과정에서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 영속적인 변화는 자주 상담실 밖의 일상생활에서 수행되는 행동을 통하여 성취하는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 대부분의 경우에 내담자들은 문제 해결에 필요로 하는 적절한 자원, 강점,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 효율적인 상담은 내담자들의 문제, 삶, 행동 그리고 기능의 다양한 면들을 어떻게 활용       하느냐에 달려있다. (이탤릭체는 글쓴이가 첨가한 것임)    

  5) Erickson에 대한 비평

  Erickson의 모델은 postmodernism이 태동되면서 여성주의 상담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여성주의 상담자들은 문제를 가족들의 역기능적 상호작용으로 보는 대신, 특정 문화적인 가치와 제도의 파괴적인 영향으로 본다. 그들은 Erickson 모형이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정치?경제?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역사?문화적 상황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Goldner, 1998).

  또한 여성주의자들은 Erickson의 접근도 가부장적인 온정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그가 내담자들의 경험적 현실을 중요시하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한 시대의 백인 남성 의사이며, 자비롭고 애정 어린 태도와 목소리로 내담자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이며 항상 우월한 위치에서 내담자들을 다루었다(Freedman과 Combs, 1996).

  또 한 가지 비평의 대상은 trance 상태에서 의사소통을 한다는 개념이다. trance 상태에서의 의사소통이 너무 인위적이고 체계적인 은유라는 것이다. 체계 사고는 객관적인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 내담자들의 역사, 시각, 혹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기능 장애를 일으킨 기계를 연구하듯이 내담자들의 변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White, 1995). Erickson의 trance 상태에서의 접근이 종종 협동적이고 비지시적으로 보이지만, 그는 여전히 내담자들에게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비평의 대상이 된 또 다른 하나는 상담 전략에 관한 것이다. 내담자와 상담자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구성주의 모델의 상담자들은 Erickson 모델이 상담자가 내담자들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옮기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을 하도록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고도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 상담자의 임무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비록 가장 책임감 있고 잘 계획된 전략이라 할지라도, Erickson의 접근 방식은 사회구성주의 모델의 입장에서 볼 때, 내담자들 보다는 한 수 위에서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춰졌다(Hoffman, 2002). 하지만 어떤 상담자들도 내담자들에게서 일정한 반응 범주를 찾고, 결국 그들을 특정한 범주로 안내하고 있다.

  Erickson이 강조했던 내담자들의 강점 활용도 사회 구성주의자들에 의해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구성주의적 시각에서는 내담자들이 지배적인 문화적 이야기에 의해 너무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기(self)란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하여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으로 본다. 본질적이거나 영속적인 속성이 없는 이 자기개념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현상으로서의 자기 시각을 강조하고, 가족과 개인이 미개발의 잠재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 기존의 체계적 관점을 부인한다(Gergen, 1991).    
  
  4. Erickson의 영향

  Erickson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많은 연구자들이 실제적인 방법으로 상담 분야에 공헌을 계속하고 있다. Erickson의 제자들은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제자들은 1960년대까지 주말에 그를 방문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MRI 출신의 연구자들이다. 또 한 부류는 직계 제자들은 아니지만, 그의 기법을 활용한 임상가들이다. NLP의 창시자들이나 단기해결중심접근의 선구자인 de Shazer(그는 Erickson의 제자는 아니지만 초기에 MRI에서 공부했고, 그의 이론과 임상적인 접근들은 Erickson의 논문을 철저하게 검토한 결과였다.)를 예로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이후 그의 seminar에 참가했던 Neo- Ericksonian들이다.

  1) 정신건강 연구소(Mental Research Institute) 학파

  1953년부터 1962년까지 인류학자인 Gregory Bateson은 Jay Haley, John Weakland, Don D. Jackson과 William F. Fry와 함께 인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연구 과제를 주도하면서 의사소통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들을 연구했다. Erickson은 Bateson의 요청에 따라 이 계획에 참여했다. 10년 동안 Haley는 Weakland와 함께 Erickson을 찾아다니면서 변화와 상담에 대한 Erickson의 생각과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서로 토론하면서 검토했다(가끔 Bateson도 토론에 참가했음).      

  Erickson과의 접촉은 MRI 연구자들에게 상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50년대까지도 정신분석적인 접근이 상담의 주류를 이룰 때였다. 이에 반하여 능동적인 Erickson은 변화를 산출하는 시기가 짧았다. Haley와 Weakland는 Erickson에게서 역설, 역경, 최면, 과제를 부과하는 방법과 은유적인 접근에 대하여 배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상담 접근은 능동적이고 단기적이 되어갔다. 그들은 그로부터 배운 것을 California주의 Palo Alto에 가져갔고, 1967년 MRI에 단기치료센터를 설립하였다.

  MRI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전제를 배경으로 그들의 주장을 이론화하였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과거 시도했었던, 익숙하기는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책은 오히려 문제를 유지시키거나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고 문제를 가진 사람이 담당하는 책임은 점점 더 적어진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는 인간의 행동이 사회적 강화에 의하여 끊임없이 형성되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한 쪽이 부적응적인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거에 시도했던 똑 같은 자극을 다시 주고 문제를 가진 사람도 같은 방법으로 반응한다. 이것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불가피함을 만들어 낸다. MRI 학파는 모든 인간의 문제는 불가피한 요소를 포함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또한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문제와 문제를 개선하는데 필요한 변화에 대해 일종의 양가감정을 가지고 상담실에 온다. 상담자가 변화하도록 격려하면, 그들은 양가감정 중 두려운 쪽으로 반응하기 쉬우며 그들의 저항은 증가한다. 그러나 만약 상담자가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함으로써 그들의 두려움을 선점하고 너무 빨리 변화하려는 것을 억제시킨다면, 그들은 양가감정 중 변화를 원하는 쪽으로 반응할 것이다.    

  MRI 모델에서 상담자의 의무는 내담자들이 자신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문제를 재구성하고, 그들이 다르게 행동하는 전략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문제들은 문제를 지속시키는 상호작용을 차단하고 그들의 방향을 돌려놓음으로써 해결된다. 그것은 단순히 내담자들이 시도했던 해결책을 180도 전환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알코올 중독에 빠진 여인과 남편이 Erickson을 찾아왔다. 그들은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매일 밤 전쟁을 치러야 했다. 부인은 술에 취해 있었고 남편은 화가 나서 숨겨둔 술병을 찾았지만 늘 찾을 수가 없었다. Erickson은 남편에게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술병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만약 술병을 못 찾으면 부인은 그 다음 날 숨겨둔 술을 마실 자격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12년 동안 이러한 게임을 해왔는데, 이제 상담자에 의해서 다시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이러한 설계는 술병을 몰래 숨기면서 부인이 느꼈던 은밀한 쾌감을 박탈해 버렸다. 몰래 숨기면서 느꼈던 죄의식, 수치심, 남편의 당황하는 모습을 유도하던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을 이제는 의식적으로 술병을 숨기도록 하여 그녀의 무의식적인 쾌감을 빼앗아버렸다. 따라서 부인은 이제 술병을 감출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Haley, 1985b: p. 171).

  위의 사례는 하던 행동을 계속하라는 Erickson의 역설적인 개입이 부인의 무의식적인 문제 패턴을 의식적으로 수행하도록 지시함으로써 문제 행동을 그만두게 했다. 여기에서 부인의 적응을 위한 무의식적인 동기는 남편을 당황하게 만드는 게임을 즐기는 것일 수도 있고, 남편의 끝없는 관심을 유도함으로써 적응하는 방법일 수도 있으며, 남편을 패배하게 만들어 승리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MRI 연구자들은 정신분석가들과는 달리 문제의 원인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원인을 몰라도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MRI의 단기치료센터 연구자들에 의해서 정립된 의사소통이론은 Bateson(1980)이 밝혀낸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이 갖는 특성인 이중구속이론(double bind theory)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중구속이론은 간단하게 가족들이 내담자로 하여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역기능적인 대화를 빈번하게 함으로써 정신분열증을 유발한다는 이론이다(Bateson 외, 1956). 다른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라고 가르치면서, 자녀를 냉정하게 대하는 부모는 이중적인 메시지를 계속 보내게 된다. 입으로는 친절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은 자녀에게 냉담하게 대할 때, 자녀는 부모의 말대로 해야 할 지, 부모의 행동을 따라야 할 지, 헷갈리게 되고 결국 어정쩡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MRI 모델의 치료적 개입은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중 메시지를 차단시키고 보다 명료하게 의사소통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도해 온 성공하지 못한 방법(성공하지 못한 해결책)을 명료하게 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 뭔가 다른 것을 수행할 때 해결이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인 기법이 가지는 기만적인 측면 때문에 활용을 꺼리는 상담자들도 있다. 이 모델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상담자는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내담자들과 평등한 입장에 서야, 변화의 어려움을 예상하면서 변화하지 말라고 충고할 수 있다. Cade와 O'Hanlon(1993)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은밀하고 기만적인 개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상담자에 비해 우리가 신성하며 숭고하다는 자부심은 없다. 결국 우리도 그러한 대열에 속해 있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치료란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적대적인 방법을 치료로 간주하지 않는다(p. 157).        

  MRI 접근에서 상담자는 내담자들과 권력 투쟁을 피하기 위해 탈권위적인 입장을 취해서 겸손해야 한다. 상담자의 한 수 아래의 자세는 평등을 의미하며, 내담자들의 저항과 의심을 감소시켜 준다. 또한 이 기법의 의도를 솔직히 말하여 개방적인 태도로 신비롭거나 마술적인 기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투명성도 도움이 되며, 유머 있게 활용할 수도 있다.

  2) Haley와 Madanes의 전략적 상담

  Haley(1993)는 초기에 MRI에서 활동하였으나 후에 Philadelphia에 있는 Child Guidance Clinic에서 구조적 가족치료의 선구자인 Salvador Minuchin과 함께 가족상담을 연구했고, 가족상담자이며 부인인 Madanes와 함께 Washington 가족치료 연구소를 설립하여 전략적인 가족 체계 개입을 발전시켰다.

  Haley는 Erickson과의 10년에 걸친 대화를 요약해서 1967년에 Advanced techniques of hypnosis and therapy을 펴냈고, 1973년에 Uncommon Therapy: The Psychiatric Techniques of Milton H. Erickson, M. D.를 출판했으며, 1985년 Conversations with Milton H. Erickson, M. D. 라는 제목 아래 3권의 책으로 출간하였다(1985a, b, c).

  Haley는 가족구조에 의한 증상 유발과 가족발달과정을 중요하게 보았다. 모든 가족은 일련의 발달과정을 거치면서 가족 특유의 의사소통유형, 관계유형, 그리고 규칙을 형성해 간다. 이러한 발달과정에서 융통성을 많이 발휘하는 가족일수록 기능적이며 경직된 가족일수록 병리적이 된다.  

  역기능적인 가족은 가족 내의 권력 배분이 불균형적이고 위계가 혼란되어 있거나 불명확하다. 이러한 가족구조에서 구성원들은 자신의 위치 확보를 위하여 권력 다툼을 심하게 벌인다. 증상은 이러한 지속적이고 극심한 권력다툼의 결과로 인하여 발생되는 혼란된 위계질서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이다.

  의사소통 역시 중요한 관계 규정의 한 요소이다. 의사소통의 불일치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될 경우,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를 통제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발생한다. 불일치하는 메시지로 상호 작용한 결과, 위계질서의 혼란과 관계 성격을 규정하는 어려움이 증상 행동을 유발한다.  

  부모들은 부모라는 사실로 인해 자녀보다 힘에 있어서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 자녀는 흔히 부모의 어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증상 행동을 통해 부모들을 보호한다. 따라서 해결책은 부모들이 자녀를 보호할 수 있는 조화로운 위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보호할 수 있게 되면, 자녀는 부모를 보호하려는 문제 행동을 하고픈 욕구를 자연히 상실하게 된다.  

  상담은 지정된 내담자의 현재 문제나 증상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고, 관찰 가능한 행동에, 과거보다는 현재에, 그리고 성장보다는 변화에 비중을 둔다. 또한 가족조직의 변화, 즉 역기능적 상호작용의 연쇄과정을 변화시켜,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적 방법을 택한다. 가족의 역기능적 상호작용의 산물인 증상을 완화시키고, 혼란되어 있거나 불명확한 위계질서를 회복하는 데 목표를 둔다.

  MRI는 추구하는 목표가 소극적인데 비하여, 이들은 상담전략을 중요시하는 접근으로 보다 적극적이다. 이들의 궁극적인 상담 목표는 가족을 정상적으로 재조직하는데 있다. 그들은 내담자들이 변화하는 동안 생기는 갈등과 거부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전략을 활용한다. 역경을 부과하여 무의식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사례를 보자.


70살 된 노모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Erickson을 찾아왔다. 아들은 나이가 50살이었고 무위도식으로 어머니의 인생을 짜증나게 하고 있었다. 노모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면서 소일하고 싶은데, 아들이 괴롭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Erickson은 그녀에게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 후에 아들을 차에 태우고 사막으로 나가서 그를 내려놓고 다시 고속도로를 따라 되돌아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 앉아서 아들이 화를 내면서 걸어올 때까지 책을 읽으라고 하였다.    

  노모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Erickson이 반박했다. “생각해 봅시다. 이제 곧 당신의 아들은 쓰러져 기어 다닐 것이고 당신의 동정심을 자극하려고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 그럼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 되겠죠. 아들을 사막으로 데려 가세요. 그러면 아들은 처음에는 그냥 거기에 앉아서 당신을 벌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 시간 동안 사막에 있어야만 하겠죠. 덥고 나중에는 배도 고프겠죠.” 아들은 어머니가 이러한 역경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애를 썼으나 결국 노모는 Erickson의 지시를 따르게 되었다. 아들은 어쩔 수 없이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아들은 보다 활기차게 되었고 자원해서 걷겠다고 했다. 노모는 아들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Erickson이 이러한 지시를 한 것은 그녀가 상담실에 올 때 아들의 목덜미를 붙잡고 데려오는 것을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능히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그녀가 하던 방식으로 아들을 도와주게 한 것인데, 오래된 부드러운 방식이 아니라 거친 방식으로 도왔고, 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지게 되었다(Haley, 1985c: pp. 118-121).

  이 사례에서 아들의 문제 패턴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기는 의존성일 것이다. 그는 생존의 방법으로 어머니에게 무제한적인 의존성을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으므로 아들은 결국 어머니를 도운 셈이다. 아들로서는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이고, 그 외의 어떤 다른 생존 방법을 고려하지 않았다. Erickson은 어머니를 통하여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더 나은 다른 생존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아들이 통찰하게 도와주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보다 나은 생존 방법을 터득하게 됨에 따라 내담자의 문제 패턴은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역경을 부과할 그 시점뿐만 아니라 상담이 끝난 후에도 영향력이 지속되도록 내담자들이 처해 있는 자연적인 환경 속에 구축되는 절차를 구안하고 배치하는 Erikson의 전형적인 기법 가운데 하나이다(Haley, 1985a). Haley(1993)는 전략적 상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상담은 상담자가 무엇을 제안하고 각각의 문제에 대한 특정한 접근을 고안한다면, 전략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상담자와 문제를 가진 내담자가 서로 만날 때, 발생하는 행위는 서로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전략적인 상담에서는 상담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구체화시키고, 목표를 설정하며, 이러한 목표를 성취할 개입을 고안하고, 자신의 접근을 수정하기 위하여 내담자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상담이 효율적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산출된 결과를 검토해야 한다. . . . 전략적 상담은 어떤 특정한 접근이나 이론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내담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하여 상담자가 책임을 지는 모든 행태의 접근을 말한다(p. 17).

  전략적인 모델은 내담자들을 가족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기법과 조정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또한 문제가 상호작용의 결과라면, 가정폭력의 희생자도 폭력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전 근대적인 남성 우월의 접근이며, 사회체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상호작용의 패턴을 덜 강조하는 경향은 내담자들의 신념체계를 강조하는 접근으로 선회되면서, 1990년대에 들어서서 해결중심접근과 narrative therapy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Hoffman, 2002).  

  Haley는 인간의 상호작용을 권력과 통제권을 갖기 위한 대인간 투쟁으로 보았지만, 그의 부인인 Madanes는 문제를 사랑과 폭력간의 딜레마로 보고, 폭력을 사랑으로 바꾸는 전략에 관심을 가졌다(Madanes, 1990).    

  이러한 영향으로 최근에 전략적 모델은 가족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통제권을 갖게 하기보다는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전략적 모델을 활용하는 상담자들 역시 인간적으로 변해가고 있고, 사랑, 공감과 같은 감정의 표현이 새로운 형태의 인간중심적인 전략 모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내담자들에게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을 계획하는 능력만큼 강조되고 있다(Nichols와 Schwartz, 2001).      

  Madanes(1990)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힘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활용하도록 돕는 접근을 강조했다. 상대에 대하여 힘을 갖는 것은 상대를 이용할 기회를 갖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돌보고, 변화시키며, 지도해 주는 성장 지향적 기회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담의 목표는 내담자들의 삶에 조화와 균형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일에서 충만함을 찾기 위해, 그리고 놀고 즐기기 위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필요한 균형의 일부이다(p. 13).

  3) 신경언어 프로그램 (NLP)

  Richard Bandler는 언어학자인 John Grinder와 함께 의사소통에 근거한 접근인 신경 언어 프로그램(Neuro-Linguistic Programming)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1970년대 초반에 Erickson, Bateson, Satir, 그리고 Perls와 같은 심리치료 전문가들의 개입 패턴을 연구했다. 그 목적은 탁월한 상담자들이 사용하는 패턴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내담자를 변화시키는 영향력의 핵심적인 요소들 추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의사소통 패턴을 실험하기 위하여 Noam Chomsky(1957)의 선천적 언어획득이론과 다른 도구들을 활용했다. 이 언어획득의 선천적 능력으로 인간은 개인적인 특질을 형성하고 삶에서 어떻게 자신을 인식하느냐로 통합되어진다.

  NLP는 인간의 의식·무의식적 경험이 감각과 중추 신경계(Neuro)를 거쳐, 언어(linguistic)를 통해 부호화·조직화되어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한 부호화와 조직화는 컴퓨터의 원리와 같이 프로그램(Programming)화하여 저장되고 활용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인간의 행동들은 일련의 특정한 패턴,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화된 신경 과정이 작용하며, 따라서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언어화된 수월성 있는 프로그램을 작동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비록 심리학적인 배경이 부족했지만, 다른 전문가들의 놓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Erickson의 융통성으로 함께 작업을 했다. 그들은 Erickson의 trance 상태에서의 의사소통방법과 사례들을 철저하게 분석하였고, 1975년에 두 권의 Patterns of the Hypnotic Techniques of Milton H. Erickson M. D.를 출판했다. Erickson의 영향은 그들의 많은 연구물에 산재해 있고 NLP의 선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NLP의 창시자인 Bandler가 Bateseon의 소개로 Erickson에게 전화를 했다. Erickson은 자신이 바쁘다고 대답했다. Bandler는 “Some people, Dr. Erickson, know how to make time.”이라고 Dr. Erickson과 make time을 강조하면서 그로 하여금 거절할 수 없게끔 했다. Erickson도 “Come over any time."이라고 any time을 강조했다. Bandler는 전체 문장 속에서 최면적인 암시의 효과를 갖는 단어들을 강조하면서 Erickson이 동조하게 만들었다.

Bandler와 Grinder는 새롭게 개발한 모델 기법에 Erickson의 접근을 보탰다. 이러한 결합은 새로운 치료 기법의 기반이 되었다. Erickson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그들은 인간의 우수성을 이해하고 재생산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Andreas와 Faulkner, 1994: pp. 50-51).

  Bandler와 Grinder(1975)는 의사소통의 Erickson식 방식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우선적으로 토대를 삼아 각 개인이 청각, 시각, 운동감각 등의 토대에서 특유한 준거 기준을 통해 감각 자료의 일련의 분석과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정신적인 전체 지도를 만든다고 가정한다. 그들의 모델은 각 개인이 그러한 현실에 대한 전체 지도를 만드는 데 일차적인 체계나 선호하는 방식을 가진다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그들은 내담자의 일차적인 대표 체계를 사용하고, 변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치료가 치료관계를 형성하는데 효과적이고 변화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고 보았다.

  NLP 접근에서 하나의 전제는 “무의식은 선의적이며 인간의 모든 행동은 긍정적 의도에서 나온다.”이다(Linden과 Perutz, 1998). 이는 인간의 어떠한 행동도 긍정적인 의도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이다. NLP는 내담자의 신경감각계에 영향을 주어 그들의 선의의 의도대로 감각기능을 조절하고 활용하여 신체 생리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하며, 따라오는 사고 감정의 변화와 언어적 선택이나 단어 활용의 의식적 무의식적 기능에 피드백 하여 원하는 것을 찾고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접근이다.

  Bateson(1980)은 사람들이 현실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여러 종류의 지도를 사용한다고 보았다. 이 지도들은 외부 세계를 조직해 주지만 모든 상세한 지형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의 실재에 대한 지각적 지도는 실재의 영토와 부합되지 않는다.

  NLP의 현상학적 토대가 되는 구조는 “사람의 실재에 대한 지각적 지도는 실재의 영토와 부합되지 않는다.”이다.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요소는 정신적 지도와 그것이 유래하는 지각적 이해로부터 생겨난다. 모든 내담자들의 사고, 지각, 추리, 감정표현, 행동, 대응 등은 세계에 대한 그들의 모델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내담자들이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그들의 세상 모델이 그들에게 한계와 고통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느낌, 생각, 행동은 신경감각작용과 뇌의 유기적인 프로그래밍 기능에 의해서 일어나며 언어를 활용하여 내면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내담자들은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내면에서 부정적으로 조직하고, 감각을 통하여 부정적으로 다룰 때 문제가 발생한다. NLP 모델은 내담자들이 단지 풍성해지고 확장될 필요가 있는 빈약한 지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NLP는 내담자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과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심리 기술을 학습하고, 체험을 통한 생활화와 기술화의 양면적 훈련을 목적으로 한다. NLP의 기본원리는 내담자가 마치 실제인 것처럼 행동을 하게 유도하여 거기에서 일어나는 차이점을 의식하게 돕는 것이다. 즉, 내담자의 필터를 바꿔줌으로써 그의 세상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4) 단기 해결중심 접근

  초기에 MRI에서 연구를 하면서 Bateson과 Erickson의 영향을 받은 de Shazer와 그의 동료들은 Wisconsin주의 Milwaukee에 Brief Family Therapy Center를 설립했다. 1970년대 초기 가족치료모델의 한 형태로서 시작된 해결중심의 단기상담은 문제가 아닌 해결방안에 초점을 두는 접근이다(de Shazer, 1985).

  해결중심 상담에서는 문제 중심의 부정적인 요소가 아닌 예외 상황, 즉 문제가 해결된 예외적인 상황을 미리 가정하고, 그 상황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내담자가 취할 수 있는 성공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요소들을 발견하게 한다. 상담과정을 통해 내담자들은 문제해결을 위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동기를 인식하게 된다. 상담자는 안정성과 변화의 요소들을 적용하여 내담자들의 행동을 바람직한 해결 상황으로 유도한다.

  이러한 접근에서는 내담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활용하는 자원으로 과거 성공했던 경험에 일차적인 초점을 둔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이미 지니고 있다는 Erickson의 관점을 따른 접근이다. 따라서 상담자는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를 지향하고 문제의 내용이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 해결책과 새로운 행동유형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해결중심 상담에서는 내담자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발견하고, 그 변화를 해결방안으로 활용한다. 삶은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또한 해결되는 과정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는 관점이다.  

  이들은 또한 상호협조적인 상담관계를 강조한다.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해결 능력을 인식하고 행동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상담자가 내담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지 않는다. 상담자의 역할은 내담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목표를 인식하게 하는 상황을 제공하고, 그들이 지닌 장점과 자원을 활용하여 진정한 성취감을 갖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이들은 Erickson의 미래 투사 기법들을 활용하여 현재 단기상담에서 고전이 된 기적질문을 만들었다(de Shazer, 1988). 기적 질문은 내담자들을 문제가 해결되어 있는 미래의 상태로 향하게 하여, 삶을 조화롭고 성공적인 삶으로 바꾸는 투사적 상상기법이다.
  
  해결중심 상담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Berg와 De Jong(1996)의 사례를 보자. 내담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3살, 4살짜리 두 아이의 엄마이다. 이 아이들은 18개월 전에 양부모에게 옮겨졌다. 내담자는 동거하던 남자친구에게서 신체적인 학대를 받았다.

  상담자는 “제가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도움이 될까요?”라는 질문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내담자가 말하기를 자신은 매우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기 때문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내담자의 감정이나 어려움에 대해 대화를 더 나누는 대신에, 상담자는 학대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청산할 수 있었는지 질문했다. 그건 힘든 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남자친구는 그녀와 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며, 그녀를 볼 때마다 때렸기 때문이었다.

  상담자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럴 때,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남자친구를 받아들이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러지 않았죠?”라고 질문했다. 그녀는 “저도 두려웠기 때문에 몇 번은 그랬어요. 내가 그를 받아들일수록 심해졌어요. 그리고는 결국 아들까지 때렸어요.” 그녀는 남자친구가 자기 아들의 다리를 부러뜨린 폭력과 양육권을 박탈당한 것, 더 이상 남자친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작정한 것을 설명했다.

  상담자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남자를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받아들이죠. 와! 정말 놀랍군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죠?”라고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보여준 능력을 부각시켰다.

  다음에 상담자는 목표 설정을 위한 질문을 하였다. 그녀는 아이들을 되찾고 싶고, 두려움 없이 남자친구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했다. 상담자는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한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지지했다.

  내담자의 목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상담자는 그녀에게 기적질문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밤에 잠이 든 뒤 기적이 일어나서 그녀의 문제가 해결된 것을 상상해 보도록 했다. 상담자가 기적이 일어 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질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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