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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의 역사

조회 수 6103 추천 수 0 2006.08.20 20:35:18
             ****최면의 역사****

     1.최면의 기원

유사 이전부터 주술사나 샤먼들에 의해 치유행위나 종교의식 속에서 악기를 두드리며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최면상태로 유도하여 치유력을 높이거나 믿음과 부족의 결속을 강화하는 형태로 이용되어 왔다.

고대 이집트의 조각이나 기원전 10세기의 그리스 조각에 그려진 최면 상태로 유도하고 있는 모습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리고 기원전 이집트에서 “치차 엠 앙크”라는 사람이 최면으로 많은 기적을 나타내 보였다는 사실이 현존하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그의 지식이나 방법은 그리스 로마에까지 계승되어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메스머의 동물자기술

근대에 와서는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철학박사인 “안톤 메스머(Mesmer 1734-1815)”에 의해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최면술은 동물자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 명칭은 그의 학위 논문인 동물자기론에서 유래된 것이다.

메스머의 동물 자기이론은 인간의 몸에는 자력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힘을 이용하여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학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한편 환자들에게 응용한 결과 많은 환자들이 치유되는 경이적인 효과를 올리게 되었다.

메스머의 자기요법(최면요법)으로 당시의 의술로서는 잘 낫지 않던 난치의 환자들이 단기간 내에 쾌유되는 효과를 올리게 되자 메스머진료소에는 매일같이 몰려드는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이 때문에 메스머은 동업의사의 시기를 사게 되었고 그리스도도 아닌 사람이 기적을 일으킨다 하여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반목의 대상이 되었다.

메스머의 자기요법이 폭동적으로 열광하는 지경에 이르자 마침내 프랑스 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자기요법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치유효과는 인정되지만 그것은 그의 주장과는 다른 심리 효과이며 자기이론에 근거를 둔 자기요법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과학으로 인정을 없다는 판정이 내려져서 불행하게도 쇠퇴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3.제임스 브레이드

1840년대에 영국의 의사인 “제임스 브레이드”가 자기이론을 수정하여 최면은 인공적인 일종의 유사 수면상태”라는 학설을 발표하는 한편 “자기술”이란 이름도 “최면술”이라고 개칭했다.

이 최면술(Hypnosis)이란 이름은 그리스어의 히프노(Hypno), 잠이 온다는 말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러나 브레이드의 수면학설은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받게 되었고 브레이드 자신도 최면에 대한 수면 학설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후에 깨닫고 최면술이라는 명칭도 달리 바꾸려 했지만 뜻대로 안되고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그대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최면은 외과 수술에서 환자의 고통을 제거하는 유일한 마취수단으로 이용되어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마취약의 발명으로 최면이 수술실에서 쫓겨나자 오락물로 전락되어 즐겁게 하기 위한 소위 무대 최면으로 성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최면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4.리에보

프랑스의 의사 “리에보”는 1864년 난시에 거처를 정하고 최면의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는 한편 환자들을 최면 트랜스 상태로 유도하여 직접암시를 줌으로써 치료하는 혁명적인 테크닉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리에보의 최면요법에 대해서 주의를 끄는 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때마침 난시대학의 유명한 외과의사 “베른하임”교수로부터 치료를 받던 극심한 증상의 좌골신경통 환자가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호전되지를 않자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리에보에게 직접 찾아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이 때 리에보는 직접암시를 사용하여 거뜬히 치유에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베른하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리에보를 직접 만나 확인하는 한편       리에보의 최면에 걸린 환자가 직접암시로서 치료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베른하임은 리에보한테 가서 최면을 배운 후 베른하임과 리에보는 20년간을 함께 최면요법을 행해서 3만명 가량의 환자를 치료해 내게 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치유에 명성을 올리자 이 두 사람 밑에서 공부하려고 유럽전역에서 수많은 의사들이 난시로 몰려들었다.

드디어 최면 붐이 다시 일게 된 것이다.

이 무렵 세계적인 과학자로 주목되어 있던 “진마르탄”, “샤르코”도 최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샤르코는 최면의 훌륭한 성과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메스머의 자기이론을 재도입하였다.

샤르코의 견해는 그 사람이 쓴 평론이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발표되어 많은 유력자의 주목을 받았다.




                      5.샤르코의 최면실험

  프랑스의 신경학자인 샤르코는 정신적인 병 때문에 마비상태에 있는 부인을 최면을 통해 침대에서 일어서게 만드는 장면을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다.

정신질환 환자에게 최면을 걸어 치료한다는 그의 대담한 실험의 효과를 알고 프로이트를 비롯한 많은 제자가 온 유럽에서 모여들었다.

이때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샤르코의 최면학설에 관심이 이끌려 프랑스로 가서 샤르코 밑에서 종사하다가 베른하임에게도 사사하여 연찬에 노력했다.

프로이드는 베른하임 밑에서 사사하고 있는 동안 무의식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그의 무의식의 발견은 20세기의 의학과 심리학의 모든 부분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했다.



                6.프로이드의 포기

프로이드는 누구나 한번만이라도 최면현상을 목격한 사람은 잠재의식이라는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프로이드 자신은 잠재의식을 찾아내기 위하거나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최면을 이용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는 이론가로서는 뛰어났지만 최면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는데 서툴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가 최면 연구에서 힌트를 얻어 정신분석이란 학문을 완성해 내게 되었는데 자신이 이룩한 학문에 대한 강한 도취가 최면을 외면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이란 자신이 새로운 방법을 창안해 냈을 때에는 자기 것을 부각시켜서 자기 방법이 제일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프로이드가 한때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최면이지만 최면에 손을 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 후부터 프로이드 추종자들은 프로이드가 최면을 외면한 동기가 진정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고, 프로이드가 버린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 왔던 것은 커다란 실책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7. 1차 세계대전

1914년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전쟁 신경증 환자가 속출하자 이에 대한 치료는 최면요법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정이 내려지자 최면은 다시 각광을 받게 된 시대를 맞게 되었다.

    전쟁 중에 그 치료효과가 확인된 최면은 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임상적 실험이 많았으나 이때부터는 심리학자에 의한 관리실험이 행해졌고 특히 예일대학의 “C. L 힐”교수는 가장 열성적이었다. 그의   연구는 <최면과 피암시성>이라는 책에 수록, 1933년 출판되었다.

그 후 최면 연구는 미국을 위시하여 전 세계 각국에서 융성해져서 많은 학자들이 뛰어난 연구 발표를 하고 있으며 최면학회도 연달아 설립되어 국제적 교류가 성행하고 있다.




                  8.급속한 발전

    오늘날 최면의 추세를 보면 1950년대부터 최면은 두 가지 커다란 뒷받침을 얻게 되었다.

영국,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의학단체에 의하여 정식으로 최면은 가치 있는 수단이 된 것이다.

1955년 영국의학협회는 장기에 걸친 조사검토 끝에 최면은 많은 가치 있는 유용성을 가지고 있으며 의료상 지극히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의학도들에게 빠짐없이 최면을 의학에 응용하는 교육을 베풀고 테크닉 및 그 실기 응용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적극 권장하였다.

1958년에는 미국의학협회도 최면의 가치를 인정하고 대의원 총회에서 최면을 유효한 치료 수단이라고 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그 보고서는 “일반 진료의사, 전문 의학자, 치과의사들은 최면이 각자 특정 전문 분야에서 치료의 보조 수단으로 훌륭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 라고 되어 있다.

1982년 8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시에서는 44개국에서 640여명의 의사 심리학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 9차 국제최면 및 정신신체의학총회가 열렸는데 본 대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은 불감증, 성기능장애 치료, 요통에서 편두통에 이르기까지 각종 통증해소, 운동선수의 기록향상 등에 최면을 이용하여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례가 발표되어 최면요법의 진가가 재증명되었다.

요즘 미국에서는 하버드, 펜실베니아, 콜롬비아 대학 등 많은 대학에서 최면 강좌를 실시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심리학회는 심리최면과를 신설해 놓았다.

그리고 근년 미국 종합병원이 신설한 통증 처리실에서는 최면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학에는 최면 전문 클리닉 센터가 건립되어 환자들이 최면치료를 손쉽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9.범죄수사 응용

최면은 범죄수사에도 이용되어 강력사건 해결에 개가를 올렸다.

최면 상태에서는 망각되어 버렸거나 희미해진 범인의 인상착의나 범행차량 번호 등을 확실하게 떠올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959년부터 최면이 수사에 이용되어 많은 강력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류한평 박사가 1978년 수사가 미궁에 빠졌던 유괴납치사건을 유괴 용의차량 번호를 최면으로 떠올리게 함으로써 범인을 검거하게 된 것이 수사이용의 첫 적용 사례가 되었다.

그 후부터 최면이 많은 사건 수사에 도움을 주게 되자 그 진가가 인정되어 경찰대학 부설 수사간부연수소에서 최면을 교과목으로 채택하게 되었고, 현재 최면수사 전문 수사관이 양성되어 강력사건 해결에 맹활약하고 있다.




                         10.국내도입

    우리나라의 최면의 발자취를 보면 광복 전에 일본에 본부를 둔 최면연구회인 제국신비회 조선지부에서 최면강의록을 통해 최면을 보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후에는 1960년 초에 정신과의사인 이용씨가 "최면술입문"을 펴낸 것을 필두로 김용락씨가 트레이시 박사의 "최면의 신비"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최면이 눈속임의 마술이 아닌 인간에게 유용한 과학적 방법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당시 김용락씨는 최면을 보급하고자 서울에 한국최면연구소를 개설하여 문하생 배출을 시도했었는데, 그 때만 해도 일반의 최면인식도가 너무 낮고 최면을 백안시하던 때인지라 운용이 되지를 않자 곧 문을 닫고 말았다.




                  11.국내 활성화

최면이 활성화되도록 적극적으로 보급하게 된 것은 류한평 박사가 종로에 대한심리연구소를 개설한 1966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때도 최면을 요술과 동일시하던 사람이 많은 때라 연구소 운용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류박사는 최면이 학문으로서의 가치와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효능을 확신하고 최면을 대중에게 올바로 알리기 위해 공개강좌를 비롯하여, 최면서적 발행, 대학출강, 문하생 배출, 텔레비전 공개시연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던 것이 이 땅에 최면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일부 계층에서는 현대최면의 괄목할 만한 업적과 효용가치를 제대로 검토해 보지도 않고 구태의연한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왈가왈부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최면은 의학계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연구하고 활용하는 의사들이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면을 성격개선, 습벽교정, 건강을 증진, 능력개발 등에 이용하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최근 들어 한국 최면은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활성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국 교육최면 과학실천학회와 대한최면심리학회는 최면의 학술적 연구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최면도입이 늦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제강점에 의한 어려움과 전후 경제재건과정에서 물질적 가치추구에 집중되어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늦게 인식된 면도 없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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