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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구하면서...... - 람바님

조회 수 1235 추천 수 0 2014.08.21 11:01:10

서울에서 집을 구하며 느끼고 정리된 점을 나눠볼까해요~~ 


 

1. 편함은 불편의 변별 자극.

 

얼마 전에 친구가 내방에서 하룻밤 잤다. 일어나서 친구가 '너 이 집에서 살기 참 불편하겠다'고 말했다. 방이 좁고 방음이 안 돼서 밖에 소리가 다 들리고 벌레가 많이 나오고 습기와 곰팡이도 많다고.. 자기가 불편한데 자기보다 더 민감한 나는 훨씬 더 불편하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내가 느끼고 있던 불편이 의식화되었다.


오빠가 서울로 취직된 후 급하게 내가 다니는 학교 근처로 집을 알아봤고 이 집을 구하게 됐다. 처음부터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당시 난 고향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중이라 내가 직접 집을 보러 다닐 수 없었고 그 집의 월세 값이 쌌기 때문에 불평을 할 수 없었다.


가정 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오빠랑 같이 살아야 되고 가능한 한 싼 방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당연했다. 이 집에서 산지 2년 반이 되는 지금, 친구의 말을 계기로 이 집이 나와 얼마나 맞지 않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좀 더 생각해보면 경제적 부담이 나의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나는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불편이라는 것은 편함이라는 반대편이 존재할 때 변별 가능해진다. 그동안 나는 편안함휴식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 집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느낌은 잘 느껴도 그 느낌을 의식적으로 반영해주고 대처해주는 작업이 발달되지 못했다.


그래서 불편함은 느껴도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불편에 맞추어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것을 몰랐다. 이제 편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나를 보살피는 능력이 생기자 이 집에서 마음이 확 떨어졌다. 앞집 할머니 수다소리에 아침잠을 깨고 매일 같이 바퀴벌레와 게릴라 만남을 하며 마치 피폭 당한 듯이 담배 연기에 황급히 창문을 닫는 생활을 하루 빨리 청산하고 싶었다. 마침 지난달에 오빠가 회사 이전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나도 이사를 결정했다.

 

 

2. 서울 집값은 금값.

 

계약 도중에 집을 팔고 나가는 거라서 학교 근처에 매물들이 나오는 시기에 비해서 늦게 집을 구하게 되었다. 학교 근처 부동산 아저씨에게 내가 살던 집의 가격대에 맞는 집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 가격대로는 아가씨가 원하는 깔끔한 집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집에서 지원해주는 게 그 가격이라고 해도 그건 집에서 이 주위 환경을 몰라서 하는 소리지 막상 부모님이 와서 보시면 돈을 더 주고 좋은 집 골라 줄 거라고 장담했다.


우리 부모님이 이 주변 집 사정 다 알고서 제시한 금액인데... 일단 아저씨 의견을 따라서 정문 근처 보증금 천에 월세 오십짜리 집을 봤다. 학교 근처 술집가랑 크게 떨어져 있지 않아서 학생들 소리가 나고 책상 옷장 넣고 대자로 누우면 방이 꽉 차는 원룸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학교 근처는 가격대비 주거 질이 너무 안 좋아서 지하철 한두 코스 떨어진 곳으로 집을 구하려 다녔다.


집을 보러 돌아다닐수록 힘이 빠졌다. 내가 원하는 집들은 그 부동산 아저씨 말 대로 결코 내가 원하는 금액으로 살 수 없는 집들이였다. 그동안 나는 가정 형편 수준을 벗어난 무언가를 원한 적이 없었고 그래서 돈 때문에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번에 편하고 깔끔한 집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재정적 한계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그 부딪힌 강도만큼 돈에 대한 서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3.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방법.

집을 보는 첫날에는 정신없이 집을 봤고 어떤 집을 골라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흘간에 걸친 집구하기 대장정을 끝내고 나니 내게 맞는 집을 고르는 방법이 터득 됐다. 근데 이 방법은 집을 선택 할 때뿐만 아니라 물건, 진로, 연인..등 모든 선택의 상황에서 적용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선택의 준거가 될 수 있는 자신만의 조건들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그 조건 중에서 가장 큰 현실적(물리적, 물질적) 한계와 자신의 핵심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현실적 한계 내에서 핵심 욕구가 최대한 충족 될 수 있도록 다른 조건들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택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현실성과 핵심 욕구의 충족 여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 조건에 맞는 대상들을 최대한 많이 보는 것이다. 단 괜히 조건에 맞지도 않는 것을 봐서 집중을 흐리지 않도록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집을 구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주거환경의 질(깔끔, 오래되지 않은 집, 분리형 구조, 조용하고 방음 잘되는 곳, 쾌적한 주위환경)과 현재의 집과 비슷한 금액, 학교와의 거리였다. 여기서 현실적 한계는 금액이었고 나의 핵심 욕구는 주거의 질이었다. 사흘간 이 조건에 맞는 집들을 보러 다녔다.


내가 원하는 주거의 질과 금액에 완전 부합하는 집이 발견됐다. 단 그 집의 가장 큰 단점은 선택지에 놓인 다른 집들은 학교 근처인 반면 그 집은 학교까지 걸어서 1시간 걸리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엄마나 친구들이 그렇게 먼 곳은 무리라고 말렸다.


그러나 그 집은 나의 핵심욕구의 충족과 현실적 한계가 너무 잘 타협된 집이고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단점을 감수할 수 있었다. 결국 그 집을 선택했다. 그 집이 학교와의 거리라는 조건에서 객관적으로 단점이 너무 두드러져서 선택에 망설임이 컸다. 그렇지만 나의 핵심욕구는 나만이 알고 그것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자 확신이 섰다.

 

 

4. 얽혀있는 마음.

 

힘들게 골라 놓은 집들을 가지고 엄마와 전화로 의논할 때 마다 엄마는 다 부정적인 면만 꼬집어서 퇴자를 놓았다. 나중에는 내가 이사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말과 뭣 하서울로 대학 가서 자취비만 들게 하냐는 말까지 했다. 순간 눈물이 울컥 났다. 내가 그전에 집에서 어떤 불편을 겪었는지는 엄마의 안중에 없다. 남의 집에 사는 거 내 집이 아닌 마당에 불편한 게 당연한 거고 그냥 맞춰서 살지 뭣 하러 옮겨 다니냐는게 엄마의 주장이다.

 

엄마의 부정성에서 나온 닻은 내 가슴에 찍혀 박혔다. 나의 선택의 순간 때마다 엄마의 거대한 불신과 불안이 움직였고 그때마다 닻은 사정없이 내 가슴을 긁어 댔다. 나는 그 닻에 매여 꼼짝 할 수 없었다. 닻이 긁고 간 찢긴 가슴에는 피처럼 극도와 분노와 원통함이 콸콸 새어나왔다.

 

오늘 아침에 꾼 꿈이 떠올랐다. 오빠가 순수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그 말에 자격지심이 발동한 외삼촌이 대뜸 오빠한테 화를 냈다. 나는 그 순간 오빠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오빠의 입장을 변호하며 삼촌과 싸웠다. 버거웠다. 엄마를 봤다. 우리 남매는 이러고 있는데 엄마는 웃으며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있었고 나의 상황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말해도 알지 못했다.


나는 진을 빼고 나서 자리를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방을 잃어 버렸다. 거기에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 노트북과 일기장 지갑이 들어있었다. 내 마음에는 속상함 이전에 이 사실을 엄마가 알고 또 잔소리하고 혼낼까봐하는 불안이 앞섰고 애써 태연한척 하며 혼자 물건을 찾으러 다녔다.

 

엄마는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살았지 자신의 편함에 대해서 제대로 고려해보지 못해본 사람이다. 꿈에서 보였던 것처럼 엄마는 나의 상황을 알아주고 반응해 줄 수 없는 사람이다. 집을 구하는 의식적인 행동 속에서 엄마의 불안과 그 불안에 매여 있는 나의 마음이 너무나 선명히 보였다.

 

 

5. 어른의 역할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대구 집에서도 오빠랑 같이 살고 있는 서울집에서도 나는 집이 주는 안락함을 느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에너지에 간섭받지 않고 내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편히 쉴 수 있길 간절히 원해 왔다.


이번에 그 욕구가 충족되자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의욕이 솟아났다. 성인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정립되었다. 성인은 자신의 욕구를 알고 그것을 현명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집을 고를 때 나의 느낌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상관없이 그 느낌에 확신을 주는 과정 속에서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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