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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에 대해서....

조회 수 1019 추천 수 0 2014.08.29 12:54:28

집착



부처님 표현대로 인간의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일어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자체가 하나의 욕망의 덩어리요 집착하는 에고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이 에고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붙잡습니다. 에고는 무언가를 붙잡지 않으면 생존이 되지 않습니다. 에고는 무엇을 붙잡던 붙잡은 것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붙잡지 않으면 ``라는 게 없어져요. 여러분들이 집착하고 있는 것. 붙잡고 있는 게 뭘까요? 엄청나게 많겠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 제일 집착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집착하고 있을까?” 여러분들이 집착하고 있는 것. 내가 옳다. 나는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두렵다. 나는 혼자다. 내가 잘해야 한다. 죄의식과 문제들.... 나는 완벽해야 한다. 나를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이것이 우리들의 ``입니다. ``는 밖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붙들고 있는 이것들. 나는 옳아야 해.’ ‘내가 옳아에 계속 집착하고 이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것입니다.




근데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만 안 옳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되겠어요? 어떤 느낌이 들까요? 완전히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 같고,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 난리가 나겠죠. 그 다음에 나는 부족해 이렇게 지금 되어있다 말이에요 항상. 그런데 누군가가 너 안 부족해. 너 많이 가지고 있어. 너 잘 해.” 이렇게 해도 안 믿깁니다. 안 받아들여져요. 그건 내가 아니야.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두렵다에서 두려움이 나입니다. 두려움과 내가 동일시되어 있어요. 그래서 항상 안정이 없어요.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안정을 찾으려고 하면 내가 안정과 동일시되어 있어야 하잖아. 근데 내가 지금 두려움과 동일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안정이 없습니다.


잘 해야 한다.” 잘 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네 왜 그리 못해.” 하면 어떻게 되겠어? 완전 나를 무시했어.” 이렇게 느낄거란 말이죠. 동일시되어 있는데. 나는 엄청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너 그것밖에 못해.” 이러면 완전히 무시 받는 느낌을 받겠죠. 나는 완벽해야 한다.” 완벽해야 하는데 니가 완벽하지 않다. 라고 얘기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나는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기도 하고 만족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안정되어있기도 하고, 나는 혼자 있으면서도 여러 명과같이 있고,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습니다. 완벽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 양쪽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양쪽에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쪽만을 붙들고 그것을 계속 고집합니다. 그렇게 되어야지 마치인 것 같고, 내가 살아있는 것 같고, 내가 존재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보니까 우리는 에 빠집니다.





지금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하나의 을 붙들었어요. 을 다른 말로 기준 또는 이미지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지를 붙들고 이 의 거울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것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무리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이 거울이 내 것이기 때문에 이 거울을 깨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기준의 거울을 보지 않고 거울에 비치고 있는 바깥쪽을 봅니다. 거울의 밖을 보면서 끊임없이 자기가 옳아야 된다는 기준과 상을 외부로 투사합니다. 여기서도 옳아야 하고 저기서도 옳아야 돼. 계속 내가 옳은 것을 해야 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옳다고 주장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옳게 봐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괴롭습니다. 이런 거울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이런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을 해야 되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지. “! ~ 내 문제가 이것이구나.” 하고 뭔가 해결책이 나오는데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을 안 보고 저 밖을 자꾸 쳐다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는 좋은 책을 읽고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고 그 방법 찾습니다. 실컷 찾아서 해보면 뭐 합니까 그 방법도 다 에 비춰요. 그래서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 라는 존재자체가 이 의 집합체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 놓은 이 을 우리는 불교식 용어로 해서 아상이라고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 여러분들이 자기 아상이 얼마나 두터운지. 아상한 번 지켜볼려구 자존심은 또 얼마나 세우는지. 아상한번 지켜볼려구 밖에다 벽을 엄청나게 쌓아 놨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만 넌 내 사람이야. 넌 나하고 좀 친해질 수 있겠네. 어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저것은 원수 덩어리이고 적입니다. 적이기에 나에게 들어오면 큰일이 나요. 그래서 다 쳐내버리고 다 밀어내고..... ’....여러분들이 지금 만들어 놓은 그 의 덩어리가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금강경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깨닫는데 제일 좋은 방법이 무엇이냐?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그 상이 허망함을 알면, 가짜임을 알면 여러분은 즉시 깨닫는다. 이게 부처님의 깨달음에 핵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깨달으려고 하면 내가 어떤 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 을 왜 만들었을까요? 이 없으면 있는 그대로 살면서 좋을텐데. 을 왜 만들었을까요? 어쩌면 사람이 태어나서 사는 것은,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은 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은 모양이죠. 모양을 다른 말로 하면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학교 다니면서 배운 것은 상과 기준을 배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착한사람. 저렇게 하는 것은 나쁜 사람. 이렇게 할 때 너는 모범생. 이렇게 하면 너는 나쁜 학생. 이렇게 하면 너는 성공하고 저렇게 하면 너는 실패하고 이런 을 여러분들은 잔뜩 배웠어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을 가르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을 가르쳐요? 아이가 울면 옆에 가서 엄마가 나 엄마야! 엄마야! ! ! ! 이렇게 을 가르쳐요. 이것은 눈이야. 아이가 쳐다보다가 아이가 처음에는 눈인지도 몰랐고. 저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말이예요. 엄마엄마 하다 보니까 엄마인줄 알았다 말이야. 쟤는 아빠야. 아빠아빠. 아빠를 배우며 을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인생에서 배움이라는 것은 을 배우는 것이지도 모릅니다.



러면 이 은 어디에서 나오냐 하면 우리의 의식에서 나옵니다. 의식은 무엇으로 되어있냐? 하면 6(안의비설신의)6(색성향미촉법)의 만남에서 일어납니다. . 여러분들이 눈으로 보는 것들이 다 개념입니다. 눈으로 보면서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세상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눈이 없는 사람은 이 보이는 세상이 없습니다. 듣는 것. 소리를 들으면서 이 소리는 이쁜소리. 저 소리를 음악소리 멋있다. 저 소리를 나쁜소리. 차 소리 왜 저렇게 시끄러워. 막 이렇게 하는데 귀가 안들리는 사람은 어떻겠어요? 그런 이 없겠죠. 시끄러운 소리나 뭐 이런 이 없다 말이에요.



여러분들의 이 오감이 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음식을 먹어보고 이 음식 왜 이렇게 맛있어. 어떤 사람은 나 그거 맛없는데. 서로 이 다르죠.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임을 알고. 을 다 내리는 것. 다 놓아버리면 여러분들이 깨치게 됩니다. 이런사람이 수행자입니다. 하지만 일반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하면 가지고 있는 을 모두 밖으로 던집니다. 내 것을 밖으로 던져서 상대에게. 대상과 세상에 던집니다. 세상이 왜 이래? 나는 옳은데 세상은 틀렸어. 나는 옳아야 되기 때문에. 틀려야 되는 것은 저 세상과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던진다 말이에요. 이것을 우리는 투사라 합니다. 투사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투사하면서 여러분은 세상과의 관계를 갈등의 관계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을 붙들고 아무리 싸워봐야 여러분은 세상을 못 이깁니다. 그래서 이 투사 하는 마음을 이제 여러분이 자신에게로 돌려야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회광반조라고 합니다. 나에게 나온 빛을 다시 나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내 안으로 빛을 돌려서 내가 들고 있는 이 에다 빛을 비추어야지. 저 밖에 세상에다가 빛을 비추면 여러분의 내면은 어두워지고 바깥만 보여요. 그래서 이쪽(내면)으로 돌리는 것을 회광반조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마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것이 되면 이제 여러분은 깨달음을 시작합니다. 깨달음의 가장 지름길. 내가 이렇게 해보고 지름길을 알려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에 대한 핵심만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쉽게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어느 책에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성원선생님하고 내가 해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이 ’. 과 내가 항상 동일시 되어 있기 때문에. 을 유지하려고 하는 마음이 집착이고 이 집착이 여러분을 지금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이 을 이것이 임을 알고. 아 이것이 이구나. 내가 이런 것을 들고 있었구나. 임을 알고 이 을 밖으로 던지지 말고 내 안으로 다시 돌려서. 나를 봅니다. “! 내가 이렇게 보고 있었구나~. ! 내 안에 이런 상을 들고 있었구나.”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이 을 하나를 떨어뜨리는 순간에 여러분 안에 있는 나라는 에고가. 나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 에고가 확 바뀌어 버립니다. 확 작아져버려요. 그러면서 이것이 작아진 만큼 여러분 안에 자유로운 공간이 생겨요.



내가 옳다고 하는 상을 하나들고 있었는데. 내가 옳기도 하고 그를 수도 있구나!를 여러분들 아는 순간에.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옳아야 된다고 완벽하게 해 놓았던 이 상에서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고 있구나 하면서 이 반으로 나누던 기준의 벽이 사라집니다. 사라진 틈만큼 새로운 공간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좀 더 받아들이기가 쉬워집니다.



여러분들이 상처와 고통은 만들어진 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아이수를 했던 이유는 나를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수 할 때 무엇을 받아들였냐 하면. 자기가 잘 하고 좋은 것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자기가 부족하고 못한 것을 받아들였죠. 상처받았던 나. 옛날에 힘들었던 나. 좀 쪽팔렸던 나. 불안한 나를 받아들여서. 안 불안하려고 하는. 나는 불안하면 안되 하는 것이 나의 동일시인데. 불안한 나를 받아들임으로써. 불안해도 괜찮다고. 불안해도 괜찮아 이렇게 하면 내 안에 있는 불안하면 안 된다는 내 상이 뚝 떨어집니다. 그리고 나면 여러분 안에 뭔가 자유로운 안정이 저절로 생깁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마음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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