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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마치고... - 화공님

조회 수 2585 추천 수 0 2017.12.26 08:57:28

어제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가 넘어서인데 오늘 아침 7시 30분에 잠이 깼다. 더 자려고 해도 가슴에서 설레는 간질거림이 일어나 정신이 또렷해진다. 일어나서 요기를 하고 바로 함지산으로 출발했다. 날씨가 포근해서 겨울아침 산 공기도 상쾌하게 느껴진다. 아직 종아리에 남아 있던 결림이 산을 오르는 동안 사라진다.


INP에서 한 달리기와 쿤달리니는 중심 프로그램만큼이나 좋았다. 평생 3킬로를 뛰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두려움이 올라왔다. 그 긴 시간 숨참을 견딜 수 있을까. 오르막을 오를 때는 정말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호흡과 함께 있었다. 어느 정도 몸이 풀리고 궤도에 오른 중반부터는 여유로움과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산에 열심히 다닌 것과 2주 전부터 시작한 달리기의 덕분인 것도 같다.


그리고 지금 산을 오르는 내 다리와 호흡이 한결 가벼운 것은 두 번의 INP 달리기 덕분이다. 아, 이렇게 몸을 더 단련하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구나. 숨이 차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오래 달리는 것은 못 한다고 한계 지은 것이 사라졌다. 쿤달리니는 센터에서 몇 번을 했다. 처음 할 때의 눈치 봄과 당혹감이 생각난다. 그런데 거듭 할수록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잠깐 잠깐 머리로 동작을 고민하고 다른 이를 의식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음악에 접속하여 신나게 했다. 이렇게 조금씩 가는 것이겠지.


자기 탐구 둘째 날, 잠깐 밖에 나갔는데 성원 사부님께서 명확한 초점 하나를 주셨다. ‘관계 속에서 어떤 나를 쓰고 살았는가.’ 초점이 명확해지니 탐구 작업이 훨씬 쉬웠다. 상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나를 썼지만, 관통하는 패턴이 명확히 보였다. 그 중 가장 마음을 울리는 하나를 써 보면 이렇다. 상황 속에서 나는 내 욕구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인지하더라도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을 살피면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와준다.


또 상대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도 억지로 이해하고 수용하려 하면서 상대에 대한 나의 판단과 행동을 유보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첫째, 내 욕구를 드러내면 상대와 불편해질 것이고 난 그 갈등을 직면하는 것이 싫고 두렵다. 내 욕구는 급한 것도 아니고 참을 수 있는 것이어서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데 굳이 갈등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둘째, 욕구를 드러내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내 신념이 있다. 배려하고 양보하면 더 선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상대가 드러난 내 욕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수치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 자신을 보며 마음이 짠해져서 울컥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 원하는 것이 있으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애써 없는 척하는 사람, 내 곁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연민의 마음이 들어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을 해 줄 것 같다. 엄마와 아버지에게 했던 것, 집안의 일을 해결하는데 가장 큰 짐을 당연하다는 듯이 수용했던 것, 잘못을 저지른 학교 아이들의 변명을 들으며 계속 마음이 흔들리는 것, 수련 오기 바로 전 동료를 자청해서 구미역까지 태워주고 나는 먼 길을 돌아온 것...참 바보 같고 슬픈 행동이다. 그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 참아야 했고 기다려야 했다.


물론 그 행동들에 담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상대를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선한 의지가 숨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나로서 힘을 가지고 바로 선 다음에 할 일을 순서를 바꿔 무리하게 하며 나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침몰하는 배에서도 부모가 먼저 구명조끼를 입고 아이에게 입혀주라고 하지 않는가.


반성되지 않은 패턴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무한 반복된다. 어린 시절 익힌 패턴을, 변하지 않은 나는 아직도 관계 속에서 쓰고 있다. 최근의 일들을 분석해 보니 오히려 더 잘 보인다. 상황에 대한 기억이 생생해서 떠올리기 쉽다. 그리고 무력한 아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인식과 힘을 가진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쉽게 그 익숙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위의 내용을 쓰고 보니,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을 하나로 고착시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언어로 어떻다고 규정해 버리면 그 틀에 귀속되는 상황만 찾을 수도 있겠다. 때로는 내 욕구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만만하게 느끼는 상대에게는 교묘한 방법으로 폭력적으로 군 적이 있을 것이다. 위에 쓴 내용은 지금은 내가 깨어서 보아야 할 부분이니, 생활에서 행으로 새로운 운용을 해야겠지만, 전체(진실)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센터가 있어, 사부님들과 도반들이 계셔 든든하고 따뜻하다. 한 때는 전생에 내가 죄를 많이 지었다는 생각으로 현생의 고통을 표현했는데, 지금은 내가 디디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를 매순간 다르게 만들어 낸다는 것을 느낀다. 어제 한 번 잘못 걸어간 것은 오늘 바르게 걸음으로써 바뀔 수 있으며 오늘 부지런히 걷는다면 내일 난 더 가볍게 신나게 걸어갈 수 있음을 안다. INP도 그 바른 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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