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제목
> 커뮤니티 > 원장님칼럼

관계에서 우리가 상대에게 자신의 욕구를 표현이라는 것은 서로간의 욕구의 다른점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진실을 만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내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나는 이렇습니다.’  사실을 알려주려는 의도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표출은 내가 옳다는 마음을 주장하거나 너로 인해 내가 피해를 받았다는 마음에서 상대방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나'라는 에고를 확장시키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우리가 어떤 식당에 갔는데 직원의 태도가 마음에 안들고 불친절하였다면 표현의 관점에서는 ‘종업원의 이런 저러한 태도가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라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표출은 내가 내 돈주고 먹는데 이 집 종업원들의 태도가 나를 무시하는거야. 뭐이래!?“라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표현과 표출의 차이는 사실을 보려는 마음이 들어가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에고를 강화시키려는 마음이 들어가 있는가의 차이입니다.



생활명상은 에고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지로 인해 확장된 에고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차려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도를 가집니다. 새로운 시대, 영성의 시대는 내가 옳다. 내가 잘났다. 에고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상생하는 자세로 공유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입니다.



에고는 끊임없이 를 주장합니다. 에고는 내가 더 잘나고 싶고,더  잘되고 싶고,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특별해지고 싶고, 더 확장하고 싶어 합니다. 명상에서의 알아차림은 자신의 익숙한 에고가 어떤 패턴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알아차릴수록 우리는 에고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기 쉬워집니다. 마치 엑소시즘에서 빙의를 치료할 때 악마의 정체, 이름이 드러나면 악마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에고도 이와 같습니다.



에고는 동일시와 합리화라 자기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왜냐하면 에고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순간 에고는 스스로의 힘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에고는 실체가 아닌 생각이 만든 동일시를 먹고 사는 환영입니다. 그래서 에고는 사실을 거부하고, 진실에 저항하며, 자기식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어합니다. 사실을 말해주는데 그것이 자신의 존재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 싶으면 끊임없이 저항하고 방어하여 자신을 지키려고 합니다.



에고는 삶과 자신을 분리하여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이 일은 일어나면 안되는데 왜 일어나는거야!하면서 분노합니다. 그 일은 잘못된 것도, 옳은 것도 아닌 그냥 하나의 상황일 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에고를 주장하는 사람은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거야!하고 저항하며 자신의 옳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시비비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인생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 만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에고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고 에고를 놓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니다. 에고는 자신을 지키려고 하고, 방어하려고 하고, 저항합니다. 예수님은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에고는 나와 적대시 되는 대상 즉 적이 있을 때 가장 강화됩니다.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고 적을 만들거나.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은 에고가 자신의 옳음과 상처받은 자신을 강화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리에서는 상처라는게 없습니다. 예수님의 용서하라는 말은 상처와 원망을 만들어내는 그 에고를 놓아라는 뜻입니다인류의 삶에서 20세기까지는 에고가 극대화되는 시대였습니다. 자본주의는 에고의 극치를 의미합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사람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공유의 시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내 것을 주장하는 에고를 강화할수록 앞으로의 시대에서 우리는 더욱 고립될 것입니다.



인생에는 딱 두가지 선택만이 있습니다. 진리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에고의 길로 갈 것인가?입니다. 에고를 중심으로 선택해서 살아온 인류는 많은 물질적 발전을 일궈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행복과는 멀어졌습니다. 드라마 육룡의 나르샤에서 이방원은 자신의 강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까운 형제와 스승, 주변사람들을 죽입니다. 에고의 세계, 욕망의 세계는 가슴이 닫힌 세계입니다. 그것에는 상대의 아픔에 대한 공감은 없습니다. 오직 욕망이 주를 이룹니다. 



이방원은 스스로 가슴을 차갑게 만들어 에고를 선택하면서부터 외부와의 교감을 단절시키고 오직 자기내부의 욕망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 우주의 법칙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 인과응보의 법칙'에 의해 자기가 외부로 표현한 것이 자신한테 그대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원은 최고의 권력을 얻지만 죽을 때까지 암살의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서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에고가 커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불안해집니다. 지킬 것이 많아져서 방어와 의심은 더욱 커져갑니다우리는 생활명상을 통해 자신의 에고를 알아차려서 에고가 놓여진 곳에 존재하는 진정한 행복을 찾는 진리의 길로 가야합니다.


현덕

2016.04.14 23:36:37
*.226.207.70

원장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5 그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원장 2016-05-02 873
354 생활명상의 알아차림... 원장 2016-05-02 901
353 알아차림이 주는 행복.... 원장 2016-04-25 1029
352 세상의 사랑하는 내면아이들에게... 원장 2016-04-24 903
351 나에게 있어 삶이란.... 원장 2016-04-16 969
» 명상은 에고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1] 원장 2016-04-11 1549
349 문제시 하는 '나의 생각' 외에는 어떤 문제도 ... [1] 원장 2016-04-09 924
348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 원장 2016-04-03 967
347 에고의 환영에서 깨어나라.... 원장 2016-04-02 977
346 모든 것은 그냥 지나간다오... 원장 2016-03-28 898
345 에고의식에서 주인의식으로 나아감이 성장이다. 원장 2016-03-26 1273
344 우리는 왜 사는가???? 원장 2016-03-20 1014
343 우리가 말하는 생활명상이란.... 원장 2016-03-17 911
342 붙잡는 마음과 놓는 마음.... 원장 2016-03-15 983
341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마음을 내고 써야한다. 원장 2016-03-15 1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