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종일 풀잎에 나부끼는 바람소리가 많이 들린다.
바람소리는 파도소리 같다.
바람의 움직임에 파르르 마음도 떨린다. 아니 요동친다.
이유가 없다. 그냥 그럴 뿐이다.
그냥 그래...
<<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 >>
비가 내릴 때
바람이 불 때
너무 따갑지 않은 적당한 햇살을 쬘 때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구경할 때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시골길 운전할 때
반짝거리는 물방울을 살짝 만져서 촉감이 느껴질 때
흙을 만질 때
지금 이 순간처럼, 교실에 혼자 있으며 일지를 정리할 때
나는 이 모두를 지금 시골학교에 근무하며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욕심이 더 생긴다. (무언가 불만족하다는 것에서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캐치할 수 있다.) 성인의 자립에는 "돈"이라는 세상의 힘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 세상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의 타협점을 찾아야한다.
나의 현재 타협점은 초등학교 교사다. 나는 이 직업을 외적으로는 '타인의 인정' 그리고 내적으로는 '여유로움'이라는 가치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선택했다. 이 두 가지가 나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 위치에 있어보니 온전하고 충만한 만족이 들지는 않는다. 이로서 외적인 어떤 행위나 성취가 만족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출퇴근시 가장 행복한 시간인 운전을 하며 생각했다. 나의 더 큰 욕심은, [학교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운전할 때만큼의 설렘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가르치면서도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다. 학교 어디에서나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모이니 결론은 [생계를 위한 일을 하면서도 충만할 수 있으면 좋겠다.]로 흘러갔다.
수업을 2시간 했다. 수업에서 컴퓨터를 쓰지 않고 교과서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내 기준으로 평소와는 조금 다른 수업을 진행했다. 색다른 방법의 접근임을 느끼니 순간 전율이 딱 왔는데 그 뿐,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수업자료를 얻기 위해 검색을 하던 중 정말 열정이 넘치는 한 초등교사(그 분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강연도 다니신다)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업을 가르치는 방식도 독특하고 그걸 블로그에 일일이 다 정리하면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공개하는 모습, 게다가 자기가 가르치는 대로 생활 속에서 직접 실행을 하는 솔선수범도 보였다. 젋은 나이에 참 대단한 교사라는 존경심은 들었지만 그 모습대로 따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미래의 원하는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지금 나에게는 내면으로의 깊은 수렴과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어제 일지를 적고부터 자꾸만 한 이미지가 그려졌다. 고흐가 젊었을 시절, 이젤과 캔버스와 물감을 들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들판에 머무르며 변화하는 자연을 하염없이 관찰하며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나에게는 참 가치 있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물론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빠짐으로서 생계도 쪼달리고 사람들에게 무시도 당하고 힘겹게 살았을지라도....
여기까지 적고나니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 것도 같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 에고의 욕심대로 흘러가는 그것이 아니라 나의 순수한 영혼의 이끔대로 살아가고 싶다. 강인한 목소리, 청명한 이미지, 부드러운 목소리, 맑은 에너지... 이렇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