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금연… 최면, 생활 속으로 파고 들다
복잡한 세상 불안한 그들… 최면이 필요해
#‘레드~ 썬’
범죄 수사와 의학 치료 등에 주로 사용되던 최면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최면을 걸어 살을 빼고 금연을 시도하는 등 생활 밀착형 최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최면 열풍을 타고 최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텔까지 등장한 상태다. 현재 불고 있는 최면 열풍은 시대적 불안감과 무관하지 않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각종 증상을 최면으로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변영돈 대한최면의학회 회장은 “최면 치료를 받는 사람의 대다수가 우울증 같은 사회적 갈등에 의해 병을 얻은 사람들이다”고 설명했다. 생활 속으로 파고든 최면의 세계를 조명했다.
◆ 비만·스트레스·우울증 치료 등에 활용
최면이 활용되고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집중력 향상과 마인드 컨트롤. 대학교 1학년인 서모(20) 씨는 집중력을 높이고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최면상담소를 찾은 경우다. 서 씨는 “책상에만 앉으면 딴생각이 나서 5분 이상 공부에 몰두하지 못한다. 집중을 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많아진다. 재수 끝에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학업에 지장이 발생해 최면상담사를 찾았다”고 했다.
다이어트와 금연·금주에도 최면 요법이 동원되고 있다. 직장인 박모(28·여) 씨는 한 달 전 최면으로 식욕을 조절하는 최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1주일에 한 번 최면상담사를 찾아 최면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살을 빼기 위해 금식·원푸드·황제 다이어트 등을 해봤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한 것이 최면 다이어트”라고 말했다.
불안·스트레스·우울증·강박증·불면증·자신감 결여 등 전문적인 심리 치료 분야에도 최면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대학입시를 앞둔 요즘에는 고3 수험생들이 스트레스와 시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상담소를 많이 찾고 있다.
심지어 기억을 지우기 위해 최면상담사를 찾는 사람도 있다. 대구 중구 동인동에 위치한 대구최면심리상담센터에 따르면 실연 등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다며 최면 치료를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 하지만 최면으로 기억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승현 대구최면심리상담센터 원장은 “기억은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면을 통해 기억에 대한 해석을 바꿈으로써 아픈 기억을 빨리 잊게 만드는 것이 최면 치료의 핵심이다. 부정적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집착 때문이며, 최면을 이용해 버림받았다는 부정적 생각을 좋은 추억이 가득한 긍정적 생각으로 전환시켜 주면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실연의 아픈 기억도 사라져 마치 기억을 지운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자기 최면도 생활 속에서 흔히 실천하는 최면의 한 종류.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스스로 자신감을 고취하거나 운동 선수들이 하는 이미지트레이닝 등이 모두 자기 최면에 속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듯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면 성취 가능성도 커진다고 한다.
◆최면으로 ‘인셉션’을 한다(?)
‘최면을 통해 살을 빼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원리를 통해 증상을 치료하는 것일까?’ 최면에 대한 인기는 최면 방법과 효과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에릭슨, 엘먼, 스피겔,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최면 요법이 시행되고 있다. 모두 최면 요법이 발달한 미국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복잡한 심리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각 최면 요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면 요법마다 특색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에서 많이 시행되고 있는 에릭슨 최면의 특징 중 하나는 은유 등의 방법을 동원해 피최면자의 생각을 바꿔 증상을 개선하는 것이다. 엘먼 최면은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무의식 속에 숨겨진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스피겔 최면은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는 등의 암시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NLP는 신경체계와 신경체계에 영향을 주는 언어의 상호작용을 통해 행동변화 등을 유도한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 비만 치료의 경우 에릭슨 최면에서 최면자는 최면을 통해 피최면자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을 경우 구토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놓는다. 그러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봐도 먹고 싶은 욕구가 예전만큼 강하지 않아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 타인의 꿈 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고 생각을 심어 놓는 영화 ‘인셉션’에 비유될 수 있는 내용이다. 반면 엘먼 최면에서는 비만(식탐)의 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피최면자의 무의식 속에서 찾아낸 식탐의 원인을 피최면자에게 인식시켜 주고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비만을 치료한다.
◆최면요법, 과신은 금물
최면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최면 요법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최면은 치료의 한 방법일 뿐이다. 최면 효과가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과신은 금물이라는 의미. 구본훈 영남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최면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최면에 잘 빠져들지 않는 사람에게 최면 요법은 별 호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승현 원장은 “최면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으며,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도와주는 치료의 한 방법이다. 인간은 갈등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을 숨겨 두며, 최면치유사는 무의식 속에 감춰진 문제를 인식하도록 도와주고 문제 해결에 대한 방향을 제공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최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면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최면전문가로 활동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 최면 시장은 중구난방의 성격을 띠고 있어 자격 미달의 최면상담사가 적잖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최면의학회 한 회원은 “미국에서는 최면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엄격한 교육을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체계적인 교육보다 알음알음으로 최면을 배운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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