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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공님의 자기탐구 일지....

조회 수 470 추천 수 0 2019.03.21 10:34:29

사부님의 피드백을 듣고 나니 잘하고 못하고는 상대에게서 평가를 바라는 구걸의 모습일 뿐이었다. 한번 더 생각하니 그랬으나, 나는 잘하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했고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계속해서 잘하고자, 사실은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자, 허우적대고 있었다는 것을 본다.

 

오늘도 그러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숙제를 하는 아이와, 어쩌다 빠지는 아이, 그리고 대부분 숙제를 해오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매달 나가는 성적표 속 숙제상황보고 란에 X표시가 늘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어떤 일이 있건, 물론 선생의 역량이 아이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성실함과 숙제를 하는 태도는 아이 본인의 몫이 크다는 생각은 했다. 그래도 무엇인가 조취를 취해서 잘하는 학생으로 만들어 내야 내가 무능력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잇을 것 같았다.

 

어쨌든 오늘도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 숙제 중 단어 외우기가 있었다. 나는 끝나고 집 근처 사는 아이들을 태워줘야 했고, 남은 아이들도 정해진 시간에 학원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했으므로 끝나고 숙제를 하게 할 수도 없었고, 수업 시간에 일찍 오라고 해도 오지 않으니, 수업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단어 시험 탈락자들은 쉬는 시간을 갖지 않고 단어를 외우는 방법을 선택했다. 쉬는 시간을 못 가지는 패널티를 주는 것이다.

 

평소에 아이들은, 물론 집에서 아예 보지 않고 오는 경우는 없기에, 쉬는 시간에 단어를 다 외워낸다. 그러나 오늘은 헷갈리는 단어가 많아서인지 도통 아이들이 그 시간 내에 외워내질 못했다. 그래도 그 중 2명은 시험을 통과 했고, 남은 2명은 끝끝내 다 외워 내지를 못했다. 나는 숙제를 해오는 것이 시간을 버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 왔고, 숙제를 해오지 않아 불편을 겪는 것이 앞으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수업이 끝나고 5분 정도 더 단어를 외우도록 했다.

 

더 오래 잡고 있을 생각도 없었고, 다른 학원 아이들을 태워줘야 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남은 두 아이를 보니 얼굴에 짜증이 역력했다. 그 짜증은 하기 싫다는 것을 바탕에 둔 여러 감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다음 시간에 다시 시험을 친다고 아이들을 보냈고 아이들은 인상을 쓴 채로 가버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감정에 큰 동요는 없었다. 화가 날 수 있고 짜증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은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아이들이 가고 뒷정리를 하는데 데스크 실장님이 놀란 얼굴로 아이들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하셨다. 나는 단어를 계속 외워오지 않아서 좀 잡아놓고 시켰더니 화가 난 모양이라고 했다. 실장님은 그렇구나. 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갔다. 그렇게 집에 가는데 약간의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아이들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흥미마저 잡아먹은 것일까. 너무 과하게 굴었나.

 

운전을 하고 가는데 문자가 계속 왔다. 남은 2명 중 1명에게 온 문자인데 이번 숙제만 넘어가고 다음부터 잘하겠다고 한다. 나는 이 아이만 남았다면 그러라 했겠지만 이 아이에게 외우지 말라고 허락한다면, 다른 아이에게 내가 연락을 해 외우지 말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그것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호하게 해 놓고 슬쩍 눈치를 보며 외우지 말라고 하는 것 같이 되어버리면 앞으로 아이들을 끌고 가기가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일지를 쓰고 보니 그렇게까지 깊은 생각은 안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어쨌든 나의 생각은 그랬다. 그래서 니가 운동도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참 기특하게 생각해 왔다. 오늘 보니 너의 실력으로 충분히 외울 수 있는 단어들이었는데 도저히 외우기가 힘들겠니?‘ 라는 식으로 문자의 답장을 보냈다. 아이에게서는 외워보겠다고 답이 왔다. 아이가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늘 올라오는, 아이들이 그만둬 버릴까 하는 불안이 올라왔다.

 

 

오늘 내가 한 수업을 아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은데. 나는 아무래도 설명하는데 소질이 없는 것 같은데. 오늘 내가 강약조절을 못하고 너무 밀어붙인 것 같은데. 아이들이 그만둬 버려 내가 망신스러우면 어쩌지. 나의 무능력이 세상에 드러나 보이면 어쩌지. 사실 내가 여지껏 일을 할 수 없었던 이유인 여러 불안한 마음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을 드러내어 해결해볼 힘이 예전에는 전혀 없었으므로 이 부분을 드러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내 무의식이 차단했겠으나, 이제는 조금이라도 볼 힘이 생겨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깊은 곳에 있던 잘함과 못함에 대한 불안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잘함과 못함은 상대방에 대한 구걸일 뿐이지만 그것은 계속해서 나를 닦달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비난이 올라왔다. 이 작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결국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이토록 남에게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자했구나.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스스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끔찍하구나. 내 마음 속에 엉킨 잘한다는 평가에 대한 집착, 남보다 잘해서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같은 양의 우월감을 본다.

 

너무나 많은 것이 엉켜있음을 본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만큼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그 궁지 속에서 발버둥을 치는데 힘을 다 빼버려 정말로 잘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어 다시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이것이 나의 패턴이었다. 이것은 오늘의 경험으로 배우려는 태도는 아니었다. 한 치의 잘못도 남김없이 캐내려는, 비난을 목표로 한 강박 같은 것이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있다가도 끊임없이 이것을 해야 하는데 저것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 속에 시달리는 나를 본다. 그러다 정말로 잠이 와서 깜빡 잠이 들었고, 중간에 또 다시 생각으로 깨어나서는, 이러지 말고 그냥 편하게 자자. 며 잠을 잤다. 잠을 다 자고 일어나니 신기하게도 기분이 좀 풀려있었다. 사부님은 나의 걱정을 들으며 어떠한 말씀을 해주실까 생각해본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씀해주시겠지.. 경험을 통해 배우는 중이라고 말씀해 주시겠지.. 지금 너무 아이를 몰아세웠다 느꼈다면 다음에는 강약을 조절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씀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에 대한 비난이 줄어든다.

 

너무나 과하고도 가혹하게 스스로를 완벽하지 못하다고 몰아세우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이 그만둔다면 아이들이 나와 인연이 아니었고, 그리고 그를 통해 나는 또 경험하면 되었다. 사람들의 욕이 두렵지 않다면, 여기서 배우고, 이것이 나의 길이 아니라면 여기를 발판 삼아 다른 일을 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좀 무능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문제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무능력하니 배우면 되는데 무능력함을 안 드러내 보이려고 하니 그것을 막는데 에너지를 너무 소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일도 재미가 없었다.

 

일을 해보니 일을 잘 해내는 것은 정말로 성숙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무지의 무모함으로 상대를 함부로 탓할 수 있었으나 알아버린 지금은 스스로 겸손해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 대한 비난이 아닌, 진심어린 겸손이 되는 날이 온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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