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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공님의 생활탐구 일지...

조회 수 481 추천 수 0 2017.04.20 08:53:46

저녁을 먹고 좀 걸으려고 바깥에 나갔다. 집 앞 공원 옆을 지나는데 공원 저 끝에서 누가 선생님하고 목청껏 부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서 보아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우리 학교 아이다. 난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 아이도 답으로 손을 휘휘 젓는다. 이 동네의 안 가 보았던 길로 목표를 정하고 걷기 시작한다. 요즘, 아이들을 대하는 내 마음이 늦둥이 본 부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만 해서 그런지 아직 미운 아이가 없다.



아이다운 모습이 더 눈에 잘 들어오고 사랑스럽다. 다시는 이런 관계를 못 맺을 것 같았는데, 인연이 되어 꽤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된 것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난 원래 아이들에게 관대한 편인데 내 옆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더 부드러워졌다. 그 선생님은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봐 준다는 게 무엇인지,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게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사람이다. 매일 배운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내 속에도 스며든다. 이런 사람을 가까이 두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게다가 내일 저녁에는 금오산에서 이 선생님이 주선한 모임이 있는데, 밤막걸리를 맛보러 가는 것이다. 비담임, 작년 4층 멤버들이 모인 것으로 얼떨결에 나도 속해 버렸다. 나쁘지 않다. 익숙함으로는 안 가고 집에 고요히 있는 것이 편하지만 한 번 끼어 보려 한다. 평상시에도 편하게 느낀 사람들이니 특별히 애쓸 필요 없이 함께함으로 좋을 것도 같다.

 

조금씩 어둠이 내리는 동네 길을 걸으며 나에게 물어봤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한참을 걸어 몸이 풀리고 덕지덕지 묻어 있던 생각의 찌꺼기들이 풀어져 느슨해졌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하다, 라는 답이 내 속에서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충만했다, 편안했다, 감사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미래가 실감나지 않았다.



어제 차명상을 돌이켜봤다. 난 만족함은 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법 사부님은 사랑을 쓰고 있을 때의 상태가 행복이라고 하셨는데, 크게 공감이 되었다. 나 자신을 비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삶에 열지 못하는 순간이 많다. 사랑이 아닌 것, 닫힘을 선택하면서 명치에 뭔가 걸린 것처럼 난 자유롭지 못하다. 행복하지 못하다. 사랑이 있는 걸 알고, 쓸 수 있음을 알면서도, 사랑을 쓰지 않는 나를 보며 양심이 톡톡 건드려지는 걸 느낀다.



난 지금의 나를 그냥 봐 주지 못한다. 편안한 상태를 누리고 몸과 마음을 돌보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 좋으련만, 끊임없이 내가 무언가를 더 해야만 내 가치가 인정된다는 생각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 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 사람들의 별것 아닌 말과 행동을 내 식으로 해석하고 거기에 매일 때가 많다. 그러니 마음을 열고 교류하는 것도 자주 차단된다. 닫힐 때의 답답함과 비겁함은 또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돌아간다. 삶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 없는 것에 집착하고 머물려는 나를 본다. 아직은 사랑보다 두려움을 더 많이 들고 삶을 만난다.

 

산책을 하는 순간은 열렸다. 여러 조건이 좋았던 것도 같다. 몸을 움직여 에너지가 가벼워지고 긴장이 풀리는 저녁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열림 또한 내 선택이 아니었을까. 조건이 좋아도 그 순간에 다른 것을 잡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건이 좋지 않을 때도 나는 열림을 선택할 수 있다. 조금 힘이 더 들겠지만, 그만큼 내 마음의 중심을 키운다면 조건에 끌려가지 않을 것 같다.


자꾸 결심하라는 법 사부님의 말씀을 좋아한다. 사랑을, 열림을 향해 가겠다고 그래서 행복해지겠다고 한 번 더 결심해 본다. 바로 무너지더라도 또 결심해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방울토마토를 샀다. 먹거리로 건강하고 신선한 과일인 토마토를 사 들고 오니 뭔가 더 잘살고 싶다는 느낌이 마음 밑바닥에서 스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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