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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조회 수 1515 추천 수 0 2017.12.28 17:31:49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하곤 합니다. 최근에 인문학이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우리가 삶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세우는 학문이기도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쇠퇴의 길로 걷고 있지만 사회 안에서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빠른 사회적 성장과 변화의 분위기 속에서 혼란한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현실의 문제나 고통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어떻게라고 묻곤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언제나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이나 수단을 찾지 문제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방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드는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전제되어야합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고 묻기 이전에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과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우선되어야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저절로 얻게 됩니다. 또한 삶에 대한 바른 이해가 생기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대답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삶에 방식이나 조건, 방법 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문학을 통해 인간의 삶을 고찰해보면 시대에 따라 인간이 살아온 환경이나 조건, 방식을 조금씩 달랐을지 몰라도 삶과 인간의 근본적인 마음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은 사실 너무나도 짧고 무상합니다. 살아있을 때는 많은 것을 소유하려하지만 죽음 앞에서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높은 명예를 가졌어도 죽음 앞에서는 빈털터리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로 보자면 단군이래로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거의 높은 벼슬자리의 양반보다 더 잘 누리고 삽니다. 좋은 집에서 살고 먹을 것도 얼마든지 맛있는 것을 많이 고를 수 있는 매우 풍요로운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를 잘 갖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삶에 대한 고통은 변함이 없습니다. 결국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문제는 외형적인 성장과는 관계없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가 아닌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보아야합니다. 삶은 생명이며, 생명은 살아있음입니다. 살아있는 사이에는 탄생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 삶이 있습니다. 이 살아있음을 다른 말로는 작용하고있다고 말합니다. 작용을 불교식의 표현하면 연기라 합니다.

 



삶은 바로 상호작용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는 이러한 작용을 연기라 하며 또 다른 말로 하자면 관계라 합니다. 삶은 관계입니다. 우리의 삶이 잘 사고 즐겁다면 관계가 잘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주변사람, 가족, 직장, 동물이든, 어떠한 일이든 관계성이 잘 작용하고 있을 때 잘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삶의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하고 있을까요. 똑같은 조건과 상황임에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까요?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태도에는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번째는 자기 철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독립된 개인. 이것을 개별성이라고도 합니다. ‘주체적인 나는 삶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철학과 가치가 없는 사람은 인생을 선택하고 결정할 때 의존합니다. 주체적인 결정 없이 조직이나 단체의 프레임에 끌려 다니기 쉽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말입니다. 스스로 질문을 하지 않고 주위나 사회가 요구하는 것(좋은 직장, 좋은 대학)으로는 결코 행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철학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사람은 누구도 그 사람을 쉽게 대하고 건드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삶에 주체적으로 서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물을 볼 때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있고, 결정을 스스로 하며, 선택을 할 때에도 스스로하며, 선택에 대한 정확한 책임위식을 가집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자기 철학이 있는 사람이라 하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사회를 선진화된 사회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자기 철학을 가지는데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지금 이 문제로 우리 사회는 점점 바뀌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조건, 방법, 환경, 직업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 질문이 이루어졌을 때 어떠한 인생을 살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고 어디에 있던 삶을 대하는 주체적인 자신이 바로 선다면 삶에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삶에 외형과 스펙이며 더 많은 돈과, 권력, 더 좋은 직업은 행복으로 가는 길에 필요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두 번째는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삶은 일과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일과 관계를 대할 때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것일까요? 행복은 삶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서 일어나는 느낌입니다. 행복은 삶의 순간순간에 느껴지는 모든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나던, 무언가를 먹든, 놀든, 순간순간 일어나는 즐거움, 기쁨, 감동... 그 것이 행복이지, 어떤 결과물이 아닙니다. 만약 결과에 목표를 둔다면 우리는 일과 관계 속에서 더 좋고 더 만족스러운 것만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과에 초점을 두는 사람은 그 일이나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결과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하고 묻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사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안전이라는 결과물을 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루24시간 중에 8시간은 직업적인 일을 하고, 8시간을 잠을 자고, 8시간을 다른 일을 한다면 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생의 반은 성공한 것과도 같습니다. 만약에 일이 잘 맞지 않고 힘든 사람은 삶이 고통스럽고 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의 다른 상황에서 큰 상실감이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일에 들어서면 즐겁기 때문에 힘듦을 잊기가 쉽습니다.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선택에는 좋아하는 일로 가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안전이 중요하기에 도전과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사랑한다면 희생을 각오해야합니다. 사랑한다면서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려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것을 사랑한다면 결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 자체에 대한 열정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일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사랑의 태도는 어떻게 가져야할까요? 관계라는 것은 주고받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줄 알아야합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는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상대는 우리를 사랑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더 필요해서 누군가를 만나다면 상대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받고 싶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것만 강요한다면 누가 우리를 사랑해주겠습니까. 자신의 것을 내리고 상대에게 더 많은 관심을 나누어줄 때 상대는 우리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것을 지키거나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에 대해 상대는 이미 잘 알고 있음을 명심해야합니다. 계산적이 인색한 사람을 누구 좋아하겠습니까? 우리안의 사랑을 꺼내어 먼저 주면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것이 관계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쓰되 자기 식대로 쓰는 사람은 피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왜야하면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도취되어 상대와 전혀 교감이나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사랑을 쓰기 때문입니다. 관계에서 사랑의 주고받음이 원할 할 때 관계는 친밀해지고 서로의 유대감은 커지게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내면의 영성을 키워야합니다. 영성을 키움은 먼저 외부대상으로부터 자신으로 돌아와서 자기만의 철학을 가져야합니다. 영성은 과학과 종교의 만남입니다. 마음공부는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과학적이라는 의미는 사물을 가장 사실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말합니다.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입니다. 또한 종교는 근본에 대한 질문입니다. 삶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종교성이라 합니다.

 

과학적 사고가 빠진 종교는 교리나 관념으로 맹신되기 쉽고 종교성이 빠진 과학은 물질주의에 빠져 근본을 잃기 쉽습니다. 영성은 과학과 종교를 통합합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게 합니다. 인간을 알려면 몸과 마음, 에너지와 의식 전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이 탐구하여 지혜로워져야합니다. 과학적인 사고와 열린 시각이 필요합니다. 명상은 영성을 길러내는 최상의 행위입니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잘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하게 살기위해선 앞에 설명한 3가지태도를 잘 견지해야할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자기만의 경험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책임지는 마음으로 경험을 향해서 치고 나가야합니다. 스스로 독립된 개체로서 개별화를 바로 세워는 과정이 바로 자기 삶을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삶은 관계이기에 관계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삶을 창조합니다. 똑같은 상황과 사건, 사람을 만나더라도 우리의 의식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에 따라서 삶은 전혀 다른 세상을 창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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