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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식(業識)이란 말은 업()과 식()이 합쳐진 말로서 불교에서는 카르마라고도합니다. ()은 반복된 생각과 말과 행동에 의한 습관적 패턴에서 생겨나며 식()은 의식(意識)의 줄인 말입니다. 이에 따르면 업식(業識)이란 과거로부터 반복적으로 저지른 행위와 말과 생각이 원인이 되어 현재에 영향을 주는 미혹한 마음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닌 업식(業識) 밑바닥에는 진리의 밝음을 모르는 어리석음과 무(無明)의 그릇된 마음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업식은 원래는 없지만 의식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자 꿈과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만든 업식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을 만나더라도 우리가 지닌 업식에 따라 현실은 전혀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외부의 세상은 언제나 우리의 업식을 투영한 환영의 세상입니다. 세상은 개념과 관념의 이미지를 투사하거나 기준과 신념의 틀 위에 존재합니다. 하늘은 그 이름이 하늘이며, 남자와 여자도 이름이며, 좋고 나쁘고도 관념의 산물이지 실제 그런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이름과 개념을 배웠으며 우리의 의식에는 마치 그런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것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름과 개념들은 생각이 되어 말과 글로 표현되고, 개념들은 나름의 의미를 지닌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업식의 밑바탕에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욕망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이는 우리가 근원과 분리되어 있다는 소외와 무지와 어리석음이 만든 두려움입니다.

 

분리감을 느끼는 라는 에고는 두려움 때문에 무엇이든 붙잡고 동일시하여 안전을 느끼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 생각, 이미지, 느낌, 직업, 지위, 외모... 등등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것을 자신이거나 자신의 것이라고 집착합니다. 이런 집착의 강한 경향성를 우리는 업식이라 합니다. 업식은 나있음의 강한 집착입니다. ‘가 일어나면 만법(萬法)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는 것처럼 만물은 이것과 저것이라는 이원성이 서로를 투영하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립니다. 바람이 나무를 흔든 것일까요? 아니면 나무가 바람을 타고 있는 것일까요?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우리의 마음이라는 육조 혜능대사의 말처럼 세상은 각자의 업식의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업식은 원래 실체가 없는 공()과 같습니다. ()은 우리가 지닌 본래의 성품이자 원래의 우리자신입니다. 깨어남은 우리의 힘든 업식을 고쳐서 좋은 업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업식이 원래 허상임을 알아차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깨어남을 위한 명상을 한마디로 쉼이라고 합니다. 쉼은 각자의 마음에 어떤 것도 붙잡거나 동일시하던 것들이 내려진 편안한 원래의 공간이 드러남입니다. 외부에 어떤 형상과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고요함의 공간이 우리의 실체임을 믿고 그곳에 머무름이 생활명상의 목적입니다. 쉼의 자리가 없는 사람은 대상과 외부의 상황이 실체인줄 착각하고 끊임없이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내면의 공간에서 동일시를 멈추면 우리가 붙잡거나 억압했던 수많은 감정과 신념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쉼은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에고의 는 분리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존심과 방어패턴, 두려움과 저항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창살 없는 감옥 안으로 고립합니다. 진실로 외부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업식의 익숙한 패턴이 만든 생각의 속삭임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와 같습니다. 영화를 따라가지 않고 스크린에 머물면 어떤 영화도 스크린을 물들게 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근본적으로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런 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우리 삶은 고통스럽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진실한 실체는 모든(everything) 것이자 어떤 것도 아닙니다(nothing). 우리가 힘든 것은 사실 가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인간의 삶은 욕망에 대한 집착이며 그에 따른 불만의 투영입니다.

 

더 많은 욕망이 충족되어 가 확장되면 잘살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신념입니다. ‘라는 에고는 삶의 주인이 아닌 관리자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수행과 치유를 통해서 진짜 주인인 존재 자체, 생명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업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업식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해야합니다. 그리고서는 스스로 붙들고 있는 것을 놓아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어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러움입니다. 그리고 일어난 것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생활명상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의 실체가 자연스러움임을 알아차리고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또한 생활명상은 일어난 것을 못 일어나게 억압했던 업식을 알아차리고, 일어난 것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쉼의 자리에서 품어주는 마음을 갈러냅니다. 생활 속에서 어떤 대상과 상황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자가 마음의 태도를 비추는 수행이 생활명상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외부의 대상이 아닌 그것들을 대하는 의식의 수준에 따릅니다. 스스로 익숙하게 녹아 든 말과 행동과 태도가 곧 업식입니다.

 

업식의 변화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대해서 따뜻하게 바라보는 꾸준한 관심이 그것을 녹여냅니다. 만약 업식을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되면 수행은 우리를 더욱 얽매이게 하는 방편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 안에 일어나는 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가 바로 부처님이 강조하신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일어난 어떤 마음에 대해서도 한 마음을 따뜻하게 봐 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업식은 냉하고 흐르지 못하는 차가운 에너지이기에 이것을 녹여내는 것은 따뜻하게 품어주는 마음뿐입니다. 일어난 업식을 문제시하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마음은 억압된 상처를 더욱 차갑게 만들 뿐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조건 없이 따뜻하게 품는 마음이 바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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