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의미

한글 사전에서 책임(責任)이라는 말의 뜻은 責(빚 책, 꾸짖을 책, 나무랄 책, 책망할 책) 任 (맡길 임, 줄 임, 잘할 임, 능할 임) -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일과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해 지는 의무나 부담, 그 결과로 받는 제재. 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있다. 이런 뜻에서 본 책임의 의미는 무언가를 아래에서 위로 떠받들고 맡아야만 하는 힘들고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어려움을 요구한다.

하지만 책임(responsibility)에 대한 영어의 사전적 의미는 response라는 응답, 대답, 회답, 회신의 명사에서 responsive 즉각 반응하는, 관심으로 대응하는 뜻과 responsiveness 민감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동양과 달리 책임을 아래에서 위로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의 반응 즉 상황에 따른 즉각적인 깨어있는 반응을 책임의 중요한 요소로 본다.

단어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는 문화적인 차이나 사회의 가치기준에 따라 그 의미에 차이가 있겠지만 책임의 의미에서 본다면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다. 서양은 책임을 자유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왜야하면 자유란 상황에 따른 적절한 반응과 민감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상황과 자신의 원함에 더욱 민감해져서 그에 따른 적절한 반응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책임은 자유를 동반하고 자유로움을 누리게 한다.

하지만 동양의 책임은 자유가 아닌 일방적인 부담이나 의무와도 같다. 그래서 책임지라는 말은 왠지 남들의 짐을 떠안거나 자유를 구속하는 의미로 느껴지고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받게 되는 결과와 제재를 힘들어한다. 이런 동양의 책임은 유교적인 문화와 관습(충효사상)에 의해 위에 있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위의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던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논리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면 임금이 아무리 무지하고, 백성을 바르게 돌보지 못하고, 자기욕심대로 멋대로 하거나, 무능하더라도 신하가 임금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대역 죄인이 되기에 무조건 일방적으로 충성과 헌신을 다해야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그리고 부모님은 자신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릴 적 아무리 때리고, 행패를 부리고, 잘못을 해도 늙으면 무조건 봉양하고 모셔야한다는 모순적인 가르침이 있다. 이런 사상과 관습은 아래(백성과 아이)는 중요하지 않고 위(임금과 부모)는 어떤 행동과 말을 해도 괜찮다는 일방적인 의무를 요구한다.

하지만 서양의 문화는 위(임금과 부모)는 아래(백성과 아이)에 대해서 보살핌과 돌봄, 보호의 의무를 가지며 아래를 위해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할 것을 요구한다. 위(머리, 임금)가 아래(가슴, 백성)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할 땐 언제든지 위를 바꾸거나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서양문화에서 책임과 자유에 대한 의미의 기초가 되었다.

심리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크게 나눌 때 내면아이(감정, 욕구)와 내면어른(이성, 생각)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에서 내면어른이 가지는 가장 큰 자질은 내면아이에 대한 책임이다. 내면어른의 책임이란 내면아이가 가지는 욕구와 감정에 대해 상황에 맞게 얼마나 적절하게 깨어있는 반응과 응답을 해주느냐 하는 것이다(생각과 행동). 그것은 결코 내면아이를 떠맡아야만 하는 의무나 부담이 아니라 보살핌과 사랑의 관심에서 나오는 어른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내면어른이 내면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대해 제대로 보호를 해주지 못하거나 자기식대로 너무 통제를 한다면 내면아이는 억압되고 위축되어 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통제와 지나친 간섭을 받은 내면아이는 어린아이와 같이 스스로 자율성이 부족해지고, 보호받지 못한 내면아이는 관심과 지도의 부족으로 정서적 박탈감을 느끼기 쉽다.

최근에 우리사회를 힘들게 하는 세월호의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지닌 내면어른의 수준을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다. 승객과 학생들이 내면아이라면 승무원과 선장은 내면어른이다. 내면아이의 욕구에 대해 내면어른은 책임을 져야하지만 결과는 내면아이를 버리고 내면어른만 살아남으려 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힘들 때 스스로의 내면아이를 무시하고 편이 되어주지 않는 상황과도 같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돌보기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남의 편이 되는 경향이 많다. 결정적일 때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의 내면아이은 버림받은 느낌을 가지게 되고 내면어른에 대해 신뢰를 잃게 된다. 이런 모습이 세월호의 사건에서 느껴지는 우리사회의 의식수준이 아닐까한다.

또 하나의 내면어른인 공무원이나 정부는 내면아이(실종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고 상황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지도 못해(책임을 다하지 못함) 또 다른 내면아이(국민)에게 답답함과 불신을 주고 있다. 일은 벌어지고 상황은 발생했는데 수습은 안 되고 우왕좌왕하는 내면어른의 행동을 보며 내면아이인 국민은 불안해한다.

책임은 자유로 가는 길목에서 성숙의 정도를 보여준다. 책임은 단순히 짐을 떠안는 의무나 부담이 아니라 상황에 적절하게 깨어서 반응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우리는 책임을 좀 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