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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조회 수 6395 추천 수 8 2009.07.29 07:31:21
치유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그에게“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인생은 알 수가 없다.
모르기에 삶은 탐구하고 배워가는 성장과 기쁨의 과정이다.
두려움과 불안의 실체는 단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확실성일 뿐이다.
누구나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왜야하면 미래는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통제하려 해도 알 수 없는 변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믿지 못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두려워할 때 우리는 삶을 누리지 못하고 통제하려 하며, 외부에 좋은 직장과 많은 물질들로 포장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과 관심을 통해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한다.

치유란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알고 선택하는 자기책임의 과정이다.
우리가 진실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한정하여, 부조화의 마음을 만들어 외부에 투사하는 것이 모든 질병과 고통의 원인이다.
그러기에 증상과 고통은 내면의 부조화와 잊어버린 자신의 실체를 알아주기 바라는 영혼의 간절한 외침이기도 하다.

우리가 본래 사랑에서 왔으며 스스로 사랑의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분리와 두려움을 만들고, 다시금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자기한정과 실체 없는 어둠을 창조하게 된다.
빛이 없는 곳에는 어둠이 내리듯이 사랑을 잃은 자리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게 된다. 어둠으로 어둠을 해결할 수는 없다.
단 한 줄기의 빛만으로도 어둠이 사라지듯이, 단 한 조각의 사랑이 두려움을 녹여 낸다.

사랑의 삶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지 사랑을 믿고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두 마리의 개 -사랑의 개와 두려움의 개-가 살고 있다. 우리가 관심과 먹이를 많이 준 개가 잘 자랄 것이다.

삶의 성장이란 내면에 있는 두려움을 향해서, 비록 그것이 무섭고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두려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아무리 회피하거나 달아나려 해도 도망칠 수는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자신을 아는 마음과 사랑을 알고 나누는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예수님과 부처님 같은 성인들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은 보지 않고 남과 자신을 비교해서 남보다 더 나은 ‘나’가 되려 하거나, 내가 되고 싶은 ‘나’가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자기가 되려고 한다.
남과 비교해서 성격과 외모도 좋고 활발하며, 능력과 인정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들은 현실의 그렇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고, 정죄하며, 스스로의 감정과 느낌을 억압하여 주눅 들게 만든다.

삶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힘없고, 외롭고, 초라하며 보잘것없음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진 것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마음에서 나온다.

변화되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과 갈등은 우리 마음이 가진 내면의 갈등이 외부로 투사된 것일 뿐이다.
세상은 유사 이래 언제나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바로 모든 갈등의 원인이자 또한 해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아는 것이 행복이며 사랑의 길이다.
자신을 알기를 포기하거나 거부하고 자신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을 때 우리의 내면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된다.
두려움은 부정성 속에서 스스로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문을 닫아놓고, 내어주지도 않지만 받아들이지도 못하여 자기가 만든 한계 안에서 생명력을 썩게 만든다.

치유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질병에서 회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오랜 세월 사로잡혀 있던, 실체 없는 생각이 만든 두려움과 부정성의 최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무지란 지식이나 학습의 결여가 아니라 가치의 혼란과 갈등을 말한다.
우리가 외부에 인정과 권위를 세우려는 것은 자신의 알맹이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알맹이는 우리가 가진 사랑에 대한 신뢰와 경험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은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 가진 생각과 관념들을 소중히 붙들고 남의 흉내를 내려고만 한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가짜들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진짜를 알 수가 없다.
남의 권위에 기대어 힘을 얻으려는 사람은 모방자가 되어 자기 확신을 잃게 된다.
사랑을 알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며, 진실이 아니며,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에고가 만든 환상이며, 생각에만 존재하는 망상이다.

옛날 중동에 살던 어느 젊은이가 자신의 결혼식에 쓰려고 신부가 착용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부자 이웃에게서 빌렸다.
그 젊은이를 신뢰한 부자는 그 목걸이가 자기 집안의 가보이며 가치로서는 따질 수 없으니 소중히 사용하고 돌려달라는 당부와 함께 목걸이를 내주었다.
결혼식은 성대하게 잘 끝났다.

하지만 결혼이 끝난 후 신부와 젊은이는 목걸이가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두려움에 휩싸인 그들은 부자 이웃을 피하여 야밤에 도주를 하였다.
그리고 멀리 다른 도시로 이주하여, 잃어버린 목걸이의 값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15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목걸이 값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자 이웃을 찾았다.

그들은 부자 이웃에게 용서를 구하고 값을 배상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늙어버린 부자 이웃은 웃으면서, 그 목걸이는 진짜가 아닌 가짜라고 하였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자기집안의 가보로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진짜는 항상 숨겨두고 외부로 사용할 때는 가짜를 만들어 활용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괜찮다고 하였다.
부자 이웃으로부터 자신들이 잃어버린 목걸이가 진짜가 아닌 가짜였음을 들은 그들은 기쁘기보다 한순간 너무나 허탈하고 온몸에서 맥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의 모든 삶이 오직 목걸이를 위해서 살아왔는데…….

젊은 부부의 가짜 목걸이 이야기와 같이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확인해보지도 않은 채, 스스로 세운 상처와 두려움을 붙들고 평생 그것에 매여, 죽을 때까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단한 순간도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어둠은 빛이 일어나면 사라지고 무지는 앎 속에 사라지듯이, 두려움은 사랑이 살아나면 없어진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가정 안에서 사랑을 물려받기보다는 부모님이 가진 두려움과 불안을 물려받았으며, 학교에서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서 외부에 갖추어야 할 방패와 갑옷으로 치장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두려움을 가득 심어 그들이 존재로서 꽃피워야 할 도전과 꿈을 잃게 만들고 안전 위주의 패배의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잃은 채 사회의 틀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힘은 내면의 힘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의 허울이 만든 투구와 갑옷(학력과 직업)일 뿐이다.

언젠가 조직과 사회가 준 그들의 갑옷과 투구가 벗겨지는 순간, 그들은 스스로 외면했던 엄청난 두려움에 노출되면서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들은 힘들고 무겁지만 될수록 갑옷과 투구를 벗지 않으려 하고 그것을 붙들고 조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무력감과 자신 없음은 스스로 자유에 대한 고통을 회피하려는 마음이다. 그들은 자기 삶에 관한 문제에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이때 그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자신감의 상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함에서 생겨나는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신경증과 고통은 스스로 사랑으로 삶을 선택하기보다는 두려움으로 삶을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진정한 행복과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는 긍정심리학이나 성공학의 가르침과 같이 외부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기의 내면으로 돌아가 무의식의 어둠과 두려움을 얼마나  빛과 사랑으로 의식화했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내 안의 어둠과 상처가 만든 두려움은 거부하고 저항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따뜻한 사랑과 이해와 관심을 가져줄 때 녹여진다.
이 세상과 신은 원래 사랑이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할 것은 없다.
죄의식과 두려움은 인간 자신의 분리 의식이 만든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사랑해야 할 부모와 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에 두려움이 만든 높은 기준의 벽을 세우고 서로를 단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만든 생각의 벽을 치워버리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조건 없이 만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자신이 세워 놓은 높은 기준의 벽 한쪽에 서서 상대가 넘어올 때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두려움은 조건의 사랑을 만들고, 조건의 사랑은 상대에게 상처와 고통을 남길 수밖에 없다.
사랑은 언제나 조건 없이 빛나고 있다.
두려움의 최면에서 깨어나 사랑이 존재의 본질임을 아는 것이 배움이요, 행복이요, 기쁨의 길이다.

생명과 사랑이 온 누리에 그대와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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