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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관계이며, 관계를 통한 경험이 삶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본다면 경험 자체는 독도 아니고, 지혜도 아닌 그냥 경험 그 자체 일 뿐이다.

우리는 각자가 삶의 순간에 경험 그자체에 머무를 수 있다면, 경험은 살아있고 지금- 이순간에 존재할 수있을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기억속에 저장하고는 좋은 경험은 자신과 정당화하거나 동일시하여 '나'라는 에고를 강화하는데 활용하고, 나쁜 경험은 기억에서 억압하거나, 부정하거나, 보지 않으려 한다

 

얼마전에 두명의 수행자가 센터를 방문하였다.

시기적으로는 조금의 시차가 있었지만, 먼저 방문한 사람은 산에서 토굴을 짓고 수행하는 스님이었다.

그분은 지난 1년전에 단식과 오랜 참선으로 생각이 없는 공의 자리를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그때의 경험과 체험은 그 스님에게 너무나 황홀하고 모든 의문과 의심이 끊어지면서, 열반의 느낌 그자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순간에 이런 경험을 보다 오랫동안 가지고 싶다는 한생각이 일어나면서 그체험은 없어지고 다시금 번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스님은 그때의 그경험과 느낌을 다시금 가지려고 몇날을 단식으로 수행하고, 여러방편을 구하면서 1여년을 노력하였지만 그체험을 가질 수없어서 마지막으로 최면을 통해서 의식에 저장된 그때의 경험을 다시금 살리고 싶다고하였다. 

 

두번째 사람은 50대의 수행자였는데 그는 30대 후반에 요가와 단식을 통한 명상을 하면서 어느날 가슴이 열리고 우주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체험속으로 들어가면서 온누리에 이라는 진동이 울리는것을 들었다고한다.

 

이런 체험은 몇일을 계속 이어가면서, 호흡을 하면 호흡중에 아주 미세한 생각과 생각 사이의 빈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공간에 들어갔다 눈을 뜨면 2시간이라는 시간이 저절로 흘러버렸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집안의 풀들과 산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모든 형상이 꺼져버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세계가 펼쳐지면서 온누리는 분리됨이 없는 하나임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분은 그후 사업으로 바쁘다가 몇년후 다시금 그때의 체험으로 돌아가려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되지않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분은 그때의 깨달음을 다시금 체험하려고 많은 스승을 찾아다니고 수행을 정진하였으며, 몇년전에는 태국의 미얀마까지 가서 6개월을 태국 현지 스님의 지도아래 위빠사나수행(관법)을 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분은 다시는 그상태와 그경험에 이르지 못하여, 최면을 통하여 자신의 의식에 저장된 그때의 경험을 다시금 느낀다면 보다 쉽게 그상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 있지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방문하였다고하였다.

 

경험 자체는 지금-이순간이지만, 경험을 해석하는 에고는 과거 경험을 기억에서 꺼내어, 현재를 그때의 기억과 경험으로 틀을지우게 하고,  좋은 경험은 붙잡고 나쁜경험은 억압하면서, 삶을 있는그대로가 아닌 경험의 틀안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경험 자체는 아무 문제없지만, 경험을 기억하는 생각과 관념이 우리를 무지하게만든다.

 

나는 그분들이 당시에 경험한  체험은 놀랍고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분들은 경험이라는 최면에 빠져서 삶을 지금-이순간에서 한발작도 못나아가지 못하고, 과거 경험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때의 경험은 놓아버리고 삶이라는 살아있는 새로움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제안을 하였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아! 내가 몰랐구나."를 이해하고, 삶을 모르는 마음으로 보다 겸손하게 지금-이순간을 볼 수있을때 경험자체는  경험자와 경험이 나누어지지 않고 경험이라는 하나의 모습만이 있음을 보게된다.

이렇때 우리는 경험을 지혜라 이름하기도 한다.

 

경험을 붙잡지 않고, 순간순간 놓아갈때 경험은 삶이며, 생명이며, 사랑이 된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붙잡고, 그때의 경험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기억속의 경험을 마치 현재의 순간인양 착각을 한다면, 그는 사실을 보고 실재를 사는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속에서 스스로 만든 생각과 환상이 실재인양 붙잡고 혼란과 갈등의 고통에 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삶속에서 자신이나 우리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많이 보게된다.

군에 갖다가온 남자들은 과거 군대의 경험을 자신과 동일화하여 확대 재생산 하여 자신의 경험을 특별한것인양 떠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과거 한때 잘나가던 그때를 붙잡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며, 나이들어 현재의 자신은 없고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하며 했던 얘기 또하고 또하는 사람들등.......

결국 경험에의 집착은 경험과 동일화시킨 자신을 놓지않으려는 에고의 두려움 때문일것이다.

 

두분의 수행자 역시 과거의 경험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자신을 보다 특별하고 우월해지려는 에고의 몸짓은 아니었을런지?

 

삶은 순간순간의 경험이다.

하지만 경험을 축적하려는 마음은 새로운 삶과 경험들을 과거의 경험으로 한정지어 버리거나, 자신의 틀안에 묶게된다.

에고는 현실의 불안정과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해서 많은 경험들을 안정과 확고함을 위해서 붙잡으려는 속성이있다.

어쩌면 에고자체는 경험의 축적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경험 자체는 살아있음이며 지혜이지만, 그것을 붙잡는 마음이 경험을 독이 되게 만들지는 않을까?

경험에는 좋은경험도 나쁜경험도 없으며, 지혜도 독도 없다.

단지 경험을 해석하고 있는 내가 있을 뿐이다.

해석을 가지고, 분별을 내리는 이 "나로 부터의 자유"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원장

2010.07.28 10:20:12
*.200.88.173

-고경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늘상 뭔가 답답한 마음이 있었는데 글을 읽다보니 그 궁금증이 명확해 졌네요.. 

 

위의 글에서 말씀하시는 "생각이 없는 공의 자리" 라든가 "온누리가 분리됨이 없는 하나라는 체험" 이라든가 "가슴이 열리면서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체험" 이 깨달음의 여정을 향해 가는 동안에 거치게 되는 체험이라는 것은 글을 읽으면서 알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은 사람의 평상시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요?? 

 

위에서 표현한 그러한 상태에 항상 머물러 있 는 것인가요?

 

 아니면 몇 번의 체험을 통해 마음으로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일반인들과 비슷한 상태 에 있는 건가요??

 

 음..글을 쓰다 보니 일반인들과 비슷한 허접한 상태는 당연히 아닐 것 같고.. 또다른 제 3의 상태인가요??

 

 만약 제 3의 상태라면 깨달은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면 위에서 표현한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요?? 

 

 위에서 표현한 상태라는 것이 "삼매"라는 상태라면..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상태가 "깨달음"은 아니라고 하여서 위빠사나를 통해서 께달음을 증득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글을 쓰다보니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깨달음의 상태는 위에서 표현한 상태들(삼매?)에 항상 머물러 있는 상태는 아닌 제 3의 상태라는 논리적인 결론이 나오는군요..이게 맞는 건가요??

 

해피타오에 관심이 있어서 체험수기를 많이 읽어보았는데...

 

읽어보면  세션 참가자들이 위에서 표현한 상태를 일시적으로 체험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세션의 목적인 것 같기도 하구요...

 

아직 저는 그런 상태를 체험해 본 적이 없어서 매우 궁금해서 언젠가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 걱정되는 것은 (아직 체험도 못한 상태이면서 ㅋ) 그러한 상태를 일시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위에서 제시된 두 분의 사례처럼 깨달음에 대한 갈증만 더 키우고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중구난방으로 저차원적인 질문을 드린 것 같아서 실례인 것 같으나 너무 궁금합니다~

 

  

원장

2010.07.28 10:20:51
*.200.88.173

깨달음은 저또한 잘모릅니다.

한때는 저 또한 님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그러한 상태를 동경하며, 그런 경험을 붙잡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삼매나 어떤 특별한 경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분별을 저에게 많이 일으켰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던 어떤 방편을 쓰던 나름의 체험과 경험은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일어나는 경험과 체험은 무엇에 도달하는 목표나 수단이기 보다는 단순히 어떤 방편을 집중하므로 인해서 일어나는 감각의 느낌이자 열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깨어남이란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앎이 아닐까합니다.

삶의 순간순간 일어나는 내안의 감정과 생각과 욕망과 내면의 가치와 관념들을 이해하고, 그것에 물들지 않은 내안의 본래로 있는 이름하여 생명이니 사랑이니 자비의 마음으로 관계와 삶을 사는것이 아닐까합니다.

 

꺼어남은 원래 있는그대로 깨어남으로 있지만, 내안에 스스로 쓰고있는 안경과 관념과 생각의 기준과 잣대들이, 삶에서 좋은것은 붙들고 싫은것은 저항하고 거부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고통의 짐을 짊니다.

깨어남은 바깥의 누가 어떤 경험을 가지는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가진 무지를 아는 마음은 아닐까합니다.

 

나또한 그런 경험을 추구한데는 뭔가 외부로 특별하고 싶고, 더나은 자신이 되어 더멋지고 모두가 인정하는 나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랬기에 수행중의 경험을 붙들고 그 경험과 나를 동일화하여 내안의 나를 키워갔으며, 그러한 나를 인정해주지않으면 상대를 미워하거나 수준이 낮다고 분별하곤 하였습니다.

 

해피타오의 센션은 어떤 상태의 경험과 체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그동안 쓰고있던 가치와 신념과 감정의 굴레들이 실체가 아님을 인식하여 에고의 나가 아닌 본래의 나를 만나는 만남의 장입니다.

그 과정에 때로는 관념의 틀이 벗겨지고 감정이 씻겨나갈때 어떤 상태를 체험하기도 하지만 그 상태는 그냥 그럴뿐이고 진실한것은 내안의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지요.

 

님의 마음은 너무 바깥으로 나가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와 스스로 모든것을 어떻게 비추는지를 보는것이 수행의 시작입니다.

위의 질문은 의미가없는 질문입니다.

어떤 대답을 하여도 그 대답은  님에게 지식의 축적이 될 뿐입니다.

 

님의 것을 가지고 질문하시고, 님의 경험과 마음을 드러내는것이 의문입니다.

지식으로 알려고하는 마음은  또다른 분별과 사고의 한정을 낳을것입니다.

그냥 스스로 모름안에서 자신의 삶을 향해 순간순간 자신을 경험해보시길......

 

질문 감사합니다.

 

 

원장

2010.07.28 10:21:55
*.200.88.173

-수수님-

 

삶이 스스로의 최면에서 깨어나기 까지...
자신을 특별하고 우월해지려는 에고의 속깊은 뜻을 알기가지 오랜 세월이 지나왔습니다
스님과 사업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내안에서 늘 속살거리며 간지럼피는 내사람 입니다


늘 분별해 줘야하고 깨우쳐 줘야하는 그 무게를 돌리어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을때
똑같은 일을  하는데 문득 삶이 가벼워지고 함께 배우고 사랑하는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다 깨달은 죽은 부처가 되기보담 철저한 중생속에 지금 살아있는 고통속에  생명과 사랑이 넘실거립니다

그분들의 눈물겨운 간절함에 희망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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