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제목
> 커뮤니티 > 원장님칼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체계의 전환.....

조회 수 985 추천 수 0 2016.12.06 14:19:58

우리가 일상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주로 대상에 대한 이해와 탐구입니다. 자연과 사회, 경제와 정치, 종교와 사람 등.. 외부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공부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의 영역은 외부대상이 아닌 그 대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가에 대한 배움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심리적으로 동일시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마음의 본질이나 의식자체에 대한 이해와 배움을 공부하는 것은 영성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의식수준에 따라 아직 외적 성공이나 조건에 따른 성취를 중시하여 자신의 내면보다는 외부대상에 대한 이해와 배움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외부대상보다는 대상에 반응하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 생각을 이해하려는 심리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으며, 때로는 인식의 객체나 인식주체가 아닌 의식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가지는 영성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에 대한 인식의 주체로서 인간의 의식은 외부대상을 의식의 중심으로 보는 영역에서 대상이 아닌 그것을 보는 자신을 주체로 하는 심리영역으로 의식이 진화합니다. 그리고 이런 심리영역에서 의식자체를 중심으로 하는 영성의 영역으로 인간의 의식은 확장 발전해갑니다. 인간이 지닌 이런 의식의 서로 다른 영역은 인식체계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합니다.

 

아직 인류의 대부분은 인식체계에서 대상의 영역을 자기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의식체계에 사는 사람들은 외부의 상황이나 조건이 조금만 변해도 어떻게 살아야하나 하면서 내적인 마음이 쉽게 움직입니다. 외부대상이 변화할 때마다 그들의 같이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외부대상에 관심과 초점을 두고 그것들의 움직임을 잘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상황을 어떻게 요리를 할까. 저 사람을 어떻게 설득을 할까.... 이런 대상에 대한 학문은 대상이 변할 때마다 계속 바뀌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공부는 끝없이 세분화됩니다.

 

하지만 심리영역과 같이 대상이 아닌 '저 대상을 내가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공부는 대상보다는 덜 세분화되고 단순합니다. 그것은 외부대상이나 경제, 정치, 사회를 자신이 어떻게 바라보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는 무엇이고, 스스로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대상을 대하는가에 대해 탐구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은 대상을 중심으로 바라보던 인식체계기 자기에 대한 심리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아닐까합니다.

 

대상 속에서 안전을 유지하려면 너무 많이 긴장하고 눈치보며 살아야합니다. 왜야하면 외부대상들을 잘 통제하고 조율하려면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고 그것들의 변화에 대응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안전을 얻기 위해 외부를 조율하려는 노력은 성공하기 힘듭니다. 이에 반해 심리영역에서는 대상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반응하는 자기만 특성을 알아가는 공부를 합니다. 감정을 예로 든다면 나에게 불안이 있거나 어떤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게 화가 난다면 대상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불안하게 하고 무시하는 대상에게 관심을 둡니다. 그리고 이런 대상을 어떻게 처리할까에 초점을 둡니다.

 

하지만 심리의 영역에서는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무시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초점이 옮겨갑니다. 불안과 무시는 대상이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대상과의 관계에서 어떤 것을 계기로 자기내면에 있던 감정이 일어난 것으로 봅니다. 똑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불안과 무시당하는 느낌이 안 드는데 자신은 뭔가 불안감을 느끼고 무시 받았다는 느낌을 가진다면 남들과 다르게 자기 안에서는 왜 이런 느낌이 일어나는지를 알아가는 게 심리영역의 공부입니다.

 

불안의 감정이 일어났을 때 대상을 중심으로 하는 인식체계를 가진 사람들은 불안이 일어나는 저 바깥의 환경을 안전하게 처리해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외부대상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상황이 변하면 다시금 새로운 불안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심리의 영역에서는 불안이 일어날 때 외부가 아닌 자기내면으로 돌아와 나는 왜 이런 불안을 느낄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불안의 정체는 뭐지? 나는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에서 나를 편안하게 해줄까?....'등에 관한 공부를 합니다.

 

하지만 인식체계에서 영성의 영역은 심리영역보다 더욱 단순하면서 획기적입니다. 마음에 대한 오묘함은 반야심경에 잘 써놓았습니다. 대상도 아니고, 나도 아닌 이 마음이 바로 인식의 주체이자 대상이라고 합니다. 반야심경에는 모두가 없다고 말하면서 또한 모두가 있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들의 인식 체계에서는 이런 패턴이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어떻게 마음이 인식 주체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원론의 개념세계에서 내가 있다는 전제하에 세상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주체로서의 내가 없이 마음이 바로 인식주체이자 인식대상이라고 하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인식체계에서 대상이 주체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대상을 어떻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대상에서 자기에게로 인식의 중심이 들어온 사람들은 대상을 보고 일으키는 자신의 기준이나 가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고 정리하려 시도합니다. 이에 반해 마음이 인식의 주체가 되면.. 무시가 일어나고, 불안이 일어나든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에도 아무 문제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원래 마음에는 불안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안전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이것이 일어났다가 때로는 저것이 일어나지만 일어난 것은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에는 어떤 흔적도 영향도 없습니다. 마음은 원래 텅 비어 있고 모든 것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배경으로 존재 할 뿐입니다. 일어난 것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없이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모두가 마음뿐입니다.

 

하늘에는 여러 가지 구름이 지나가지만 하늘은 영향 받지 않고 원래 하늘 그대로이듯이 스크린에 수많은 영화가 상영되지만 스크린은 항상 텅 비어있습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마음에 불안이 일어나고, 오감의 느낌이 일어나지만 사라지면 마음은 언제나 텅 비어 있습니다. 소리를 듣지만 듣고 난후에는 사라집니다. 따뜻한 찻잔을 들면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놓고 나면 느낌은 사라집니다. 마음 위에 모든 것이 이렇게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우리는 생각으로 경험이라는 흔적과 그것에 대한 기억을 붙잡습니다. 마음은 대상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그냥 경험만 있습니다. 마음에는 그냥 마음만 존재합니다.

 

우리의 인식 체계에서 아직 이러한 체계가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이런 체계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머리를 가지고 머리를 찾고, 자신이 현재 등불을 들고 있으면서 불을 찾는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눈이 당연히 있는 건데 눈을 찾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마음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물속에서 물을 찾는 격이지요. ㅠㅠㅠ...

 

마음이란 것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면... ‘! 옛날부터 항상 있었던 거네. ! 그 자리에 있었는데 왜 내가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을까?’ 하게 됩니다. 너무나 쉬운 건데 우리의 인식체계 가 대상에 빠져있거나 라는 정체성에 묶여있기 때문에 마음자체가 인식주체로서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무시의 감정이 일어나면 대상 속에 사는 사람은 무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무시할까 아니면 보지 말고 관계를 끊을 버릴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대상이 아닌 자기중심의 인식체계를 가진 사람들은 내가 왜 이런 걸 느낄까? 내안의 어떤 기준에서 이런 느낌을 느끼게 하는 걸까? 나는 지금 어떤 가치 속에서 움직이는가? 와 같이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 마음자체가 인식체계의 중심이 된 사람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도 아무 문제시를 하지 않습니다. 무시라는 경험은 불안이나 기쁨과 같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경험을 뿐입니다. 일어나는 경험 자체를 얼마나 소중히 만나는가에 초점을 둡니다. 모든 경험이 바로 마음을 만나는 소중한 경험들이기에 그것들을 온전하게 그냥 느끼면 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치유하고, 인식체계를 완전히 전환하여, 삶을 바라보는 의식의 시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우리가 꿈을 꾸다가 꿈속에서 깨어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대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만나면 대상이 이렇고 저렇고,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하며 대상의 꿈을 꿉니다. 대상에서 자신에게로 돌아온 사람들은 대상과 관계없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꿈을 꿉니다. 대상이 어떠하든 그냥 자기 것을 주장하고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인식체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합니다. 그리고 대상도 아니고, 자신도 아닌 마음이 인식체계의 중심이 된 사람들은 이원성이 꾸는 개념과 환영에서 깨어나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깨어납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일어날 때 대상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마음의 본질을 얘기하면 전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사람에게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음이 인식체계의 중심이 된 사람에게는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은 아무 일이 없다고 하면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의식이 아직 대상에 속해있는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외부의 경험들이 너무나 리얼한 현실로 느껴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먼저 대상에서 자신에게로 돌아오도록 인식을 전환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돌아온 사람에게는 자기이 한 역할이나 이미지, 자기내면에 프로그램 된 자기만의 마음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자기치유의 과정입니다.

 

자신이 이해 될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의식이 진화한 사람들은 대상도 아니고, 나도 아닌 전혀 다른 인식체계의 전환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자체가 인식체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경험이든 '노 프라브람(no problem)'입니다. 어떤 게 일어나더라도 마음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자신인데, 거기에 무슨 좋은 거 나쁜 거, 이런 거 저런 거 분별할 것이 할 게 없습니다. 소리도 감각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모든 경험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 경험자체를 온전히 만나면 됩니다. 그들은 라는 기준으로 사물을 분별하지 않고 경험 자체로 느낄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인식체계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자신이 어떤 수준에서 삶을 경험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느 의식수준에 있는지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이 대상의 세계에 살면서 대상들을 더 누리려한다면 대상에 관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정치도 배워야하고, 경제도 배워야 하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맞추고, 상대를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어떻게 얻고.. 이런 걸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봤는데 지긋지긋하더라. 내가 한번이라도 편하고 싶다하면 진짜 자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로 돌아와서 '나는 왜 그렇게 바라보았을까?, 나는 왜 저것을 추구하고 있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느끼고, 이렇게 하는가?' 나를 탐구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마음에서 그냥 일어나는 것을 내가 그냥 붙들었구나, 내가 동일시한 것을 나라고 착각했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 중에서 몇 가지만 분별하고 선택하여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의식이 완전히 도약해서 마음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우리들의 삶은 그냥 삶 자체로써의 경험이자 경험자체가 됩니다. 모든 경험이 아무 문제없고, 다 재미있고, 살아있는 것이 됩니다. 마음에서 어떤 것이 일어나도 괜찮아집니다. 왜야하면 일어나는 모든 것은 또 다시 사라지는 꿈과 같고 환영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단지 마음뿐이게 됩니다.

 

마음은 텅 빈 공간과 같이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진공묘유"입니다. 없지만 뭔가 작용을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실체가 아니라 "진공"인데, "묘유"입니다. 작용이 있습니다. 살아있습니다. 고요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 일어나는 일, 사건, 생활이 계속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5 자기생각의 착각에서 벗어나라... 원장 2017-01-29 1030
414 그대의 열린 마음이 주는 향기로움.... 원장 2017-01-22 929
413 우리가 명상을 해야하는 이유.... 원장 2017-01-18 1009
412 명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원장 2017-01-03 1017
411 절대의식과 개체의식... 원장 2016-12-26 1049
410 백마디의 말보다 한번의 행으로.... 원장 2016-12-16 1080
409 삶은 게임과도 같다... 원장 2016-12-14 984
»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체계의 전환..... 원장 2016-12-06 985
407 구지선사의 한손가락 '선'... 원장 2016-12-03 1092
406 집착을 놓는 것이 마음공부입니다.... 원장 2016-11-28 1003
405 올바른 수행의 길.... image 원장 2016-11-28 977
404 윤회에 대한 올바른 정견... 원장 2016-11-18 1177
403 진실을 향한 올바른 질문.... 원장 2016-11-18 1025
402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원장 2016-11-14 1018
401 모두가 마음뿐인 것을.... 원장 2016-11-12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