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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고통은 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일어납니다. 모든 현상은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무상합니다. 하지만 일어난 사건을 우리가 기억과 생각으로 붙잡으면 지나간 것은 지금의 현실이 됩니니다. 상처라는 것은 원래는 없습니다. 하지만 라는 개념을 붙잡고, 내가 원하는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상처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상처의 다른 말은 고통이지만 진실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라는 개념은 어떤 역할과 이미지를 만들고, 경험들을 기억에 저장하고서 그것을 생각으로 다시금 떠 올릴 때마다 상처의 고통을 반복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고통은 실제적인 사실이기보다는 이미지나 생각에 의한 환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나간 상처는 기억에만 존재합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면 상처란 없습니다. 치유는 과거의 고통 받았던 상황으로 다시금 돌아가서 그 사건이나 상황을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재에서 그것들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처는 받아들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받아들임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기준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것은 상처가 되고 고통으로 남게 됩니다. 결국 치유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지금의 새로움과 살아있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놓아버리는 것을 용서라고 합니다. 용서는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을 새롭게 허용하는 마음입니다. 치유과정에서 과거의 상처받은 마음에 대해 상대의 사과나 잘못에 대한 인정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스스로 놓아주는 마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놓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자신을 그때의 상황을 지속시키고 자신을 고통에 빠지게 하여 지금의 현실을 새롭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모든 감정과 고통의 문제는 상대의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세계이자 자기의식이 규정하고 창조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만든 세상을 외부로 투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기사랑의 시작입니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붙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기 위함입니다. 그냥 놓고 새롭게 하면 됩니다. 그거면 아무 일이 없습니다. 삶은 순간순간 살아있고 새로움으로 가득합니다. 모든 것은 단지 조건에 따라서 일어날 뿐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이러 이러한 역할과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야 하는 것은 만들어진 자기정체성입니다. 만들어진 의식인 업식은 스스로 붙들고 동일시하는 것들의 집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하지만 이런 창조는 실제 없는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분별심으로 나누고 이름과 개념을 붙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름과 개념이 없으면 우리의 의식 안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조류독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런 게 있었어도 이름과 개념이 없었기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름과 개념으로 라는 정체성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라고 하는 것은 이름과 개념능 붙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나는 태어났어.’ 라고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진실로 자신의 태어남과 죽음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태어난 것은 의식에 의해 분리된 만들어진 이름과 개념일 뿐입니다. 그래서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은 사실 없다고 합니다. 모두가 의식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한바탕의 꿈과 같습니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자신을 비춰주는 대상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대상인 부모님이 우리에게 태어났다고 이야기 해주고, 이름을 붙인 개념으로 우리는 존재합니다. 실체는 태어남과 죽음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살체인 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이름과 개념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든 것은 개념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실제하는 세계이기보다는 각자의 의식이 만든 개념의 세상입니다. 개념은 이원성 속에서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는 상호 의존적입니다.



그러면 진짜 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름입니다. 안다고 이름 붙이면 그 순간 그것은 그것이 아닌 이름과 개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라는 것도, ‘내것이라는 것도, ‘를 위한다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모두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인간이 만든 것에는 어떤 진실이나 실체도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에 그대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이 화두는 '너는 무엇을 진짜 자신이라고 하는가?' 에 대한 의문입니다



인도의 성자 마하라지는 사람들에게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에 너는 무엇이냐고 자주 질문하곤 했습니다. 부모님에게 태어나기 전 우리는 정자와 난자였지만 사실 정자도 내가 아니고 난자도 내가 아닙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면 생명체가 잉태됩니다. 그럼 정자와 난자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정자와 난자는 음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몸은 음식의 정수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물의 몸은 다른 생물에게 음식이 됩니다. 인간을 먹는 동물이 있으면 인간은 그 동물의 음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음식이기 때문에 죽으면 땅의 음식으로 돌아갑니다. 구더기가 먹고 온갖 벌레들이 먹게 됩니다. 그러기에 육체는 내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음과 양이 만나 작용을 일으키고 생명이 만들어집니다. 생명을 의식이라고도 하고 살아있다고 합니다. 생명과 의식은 나눌 수 없는 그냥 하나의 의식이자 하나의 생명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식과 생명이 형상을 가지고 이름과 개념을 붙이는 순간 세상은 창조됩니다. ‘내가 존재한다.’ 라는 하나의 생각이 아닌 이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합니다. 깊은 잠속에 있으면 나는 없습니다. 하지만 꿈을 꾸는 순간, 나와 세상은 창조됩니다. 꿈 속에서 드러난 세상은 꿈에서는 너무나 리얼한 현실이 됩니다. 하지만 그 꿈을 꿈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꿈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우리의 한 생각이 놓이는 순간에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진짜 나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원래 무이자, 하나이자, 공이자, 모든 것입니다. 만들어진 의식인 업식은 실제와 사실을 모릅니다. 업식은 어떻게든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으로 포장을 합니다. 실제와 사실만이 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순간 만들어진 의식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에고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에고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과 진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문제를 회피하는 패턴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업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키워서 에고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의 업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만든 이야기를 다 빼고 나면 사실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이 남습니다. 우리는 사실에다가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집착되어 살아갑니다.



우리의 에고는 대단히 능숙한 이야기꾼입니다. 온갖 이야기로 자신을 이야기 속에 가두게 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자유는 노력하고 투쟁하여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든 자기생각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고는 사실보다는 사실에 대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실제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에고의 구조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업식의 구조자체는 분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에고자체는 불안이 커질수록 더욱 커지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을 낚아서 이용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사람은 칭찬하는 것에는 잘 걸리지 않지만 부정성에 얼른 붙잡는 속성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강화함으로써 에고를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에고에는 투쟁과 싸움과 비난을 좋아하지 따뜻함이나 상대를 살리는 사랑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사이비 종교나 사람을 잘 낚는 장사꾼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합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우리의 두려움을 크게하는 곳은 우리를 이용하려는 곳이기에 주의해야합니다.



자본주의 경제구조 자체가 두려움을 밑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를 얘기할 때면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인 이야기보다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인간의 에고를 가장 크게 키우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경제구조입니다. 우리는 불안과 불편함이 강화될수록 자기만의 업식에 더욱 쉽게 빨려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업식은 자기만의 이야기인 망상을 강화합니다. 업식은 원래 진실보다는 망상을 먹고 삽니다. 망상을 많이 할수록 그 사람의 업식은 커집니다. 망상은 왜곡된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을 강화시킵니다. 망상 속에 들어갈수록 업식은 커지고 우리의 영혼은 진실 된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고통은 우리가 자기만의 업식을 강화시킨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이제 깨어서 사실과 진실을 보는 훈련해야합니다. 자신만의 감정에 이야기를 빼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믿을수록 우리는 자신을 더 큰 고통으로 밀어 넣고 있음을 봐야합니다. 감정이나 생각은 조건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모습은 감정이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을 붙잡으면, 그 생각이 만든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그 생각에 대한 동일시와 집착이 우리의 고통입니다. 업식은 그렇게 강화됩니다. 이제는 그런 업식에 휘둘리지 않도록 깨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진짜 나는 무엇일까요? 진짜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Nothing입니다.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고, 역할도 이미지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기에 모든 것이 됩니다. 나가 없으면 세상도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주체가 없으면 객체는 당연히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났다가 동시에 사라집니다.



생각이 분리를 창조합니다. 우리는 더욱 깨어서 자기만의 업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진실로 비춰봐야 합니다. 비춤은 바로 깨어남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의식은 생명 자체입니다. 모든 것은 의식이고 마음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내게서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은 이야기이자 개념입니다. 사실 그것은 모두 환상입니다. 비춤과 깨어있음이 깊어지면 차츰 개념이 깨어지고 생각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진실한 행복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것에서 일어납니다.



부, 인기, 명예는 개념적인 것이기 때문에 얻어봤자 종국에는 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버리라는 말은 자신이 들고 있는 개념을 놓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생사도 개념이기에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사실 없습니다. 우리는 명상을 통해 자신 내면으로 들어가서 사회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닌 진실을 보아야합니다. 가짜나 만들어진 세계가 아닌 실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입니다.


형상을 형상으로 보지 않으면, 개념을 사실로 보지 없으면 모든 것은 하나로 보이게 됩니다. 형상은 실체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개념으로 된 앎과 지식이 많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실체 안으로 들어가기 힘듭니다. 세상의 지식을 아무리 많이 배워봤자 진실을 알지는 못합니다. 자신의 진실한 면목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로움입니다. 진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만들어진 개념에 많이 물들수록 우리는 자신만의 진실로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헌신 명상은 우리에게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업식을 멈추고 몸의 의식과 순수의식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합니다. 업식이 센 사람은 헌신명상에 대해 저항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업식이 사실이 드러날 때 자신이 없어 질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영감과 직감으로 전체를 통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업식으로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을 직면하여 사실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업식을 더욱 강화하려는 쪽으로 갑니다. 우리는 진짜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행복한 삶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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