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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함께 하는 생활명상....

조회 수 1063 추천 수 0 2017.01.29 14:56:22

과학자들이 주장하기로는 물질세계인 이우주는 빅뱅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우주가 태초에 거대한 폭발이라는 빅뱅에 의해서 하나의 나선과 같이 우주가 계속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우주창조의 다수가 수용하는 우주팽창 이론이다. 하지만 힌두교에서 볼 때 우주는 나다(진동) 브라만()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진동이 곧 하나님이다.' 라는 뜻이다. 최초의 진동은 옴이다. 옴의 진동은 최초의 진동이자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진동을 하나로 표현할 때 나오는 소리가 옴이다. 옴의 진동은 우주의 생명에너지가 작용하면서 일으키는 진동의 합이기도 하다.



인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 신경, 에너지 통로인 차크라, 장기..등은 스스로 진동을 한다. 각자는 자기만의 고유한 진동 주파수가 있고, 이것이 모여 우리는 각자의 진동 주파수를 가진다. 동물과 광물, 자연 또한 진동한다. 이러한 모든 진동이 모여 내는 진동이 옴의 진동이며, 힌두교에서는 이 우주를 진동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최초의 소리가 옴이라면 최초의 의식은 내가 있다(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하고 만들어진다. 내가 있다고 하는 순간 하나는 분리되고 세상만물이 나타난다. 자기인식이 없는 갓난아이 일 때 외부세계는 아직 아이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는 아직 의식이 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의식이 만든 세상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살고 있다. 잠속에서 꿈을 꾸듯이 의식이 움직이면 꿈의 세상이 펼쳐진다. 꿈에서 우리는 두려운 경험이나 슬픔, 기쁨, 새로운 장소나 사건... 등을 경험한다.



하지만 꿈속의 모든 경험은 깨고 나면 모두 다 사라진다. 꿈속에서 우리는 비록 나의 꿈이지만 그 꿈의 내용을 자기마음대로 어쩌지 못한다. 우리는 꿈 자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조건에 따른 연기의 작용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식이 꿈꾸는 이러한 작용세계와 같이 꿈을 깨고 나면 우리는 다시금 자기만의 의식이 만든 생각의 꿈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진짜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이 온전히 쉬어진 상태에서 드러난다. 그것을 '존재 한다.' 라고도 표현한다.



의식이 만든 작용의 세상은 어떤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인다. 우주의 큰 패턴은 우리 몸 안에 들어와 있는 패턴과도 같다. 그것은 우리의 장기 안에도 똑같이 들어와 있고, 세포 속에도 들어와 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하나의 수정체가 되면서 하나는 두 개로.. 네 개로... 쭉쭉 계속분열 해 나간다. 다리에 있는 어떤 하나의 세포나 머리카락이나 모든 세포에 있는 패턴은 전체 세포가 가지고 있는 패턴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렇듯이 우리가 나라고 하는 모든 것은 세포 하나에 모두 다 들어있다.



바다의 표면에는 수많은 물결이 움직인다. 물결과 바다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물결이 자신을 다른 물결과 분리되어 있다고 본다면 바다를 알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바다이다. 하지만 자신이 물결이라고 집착한다면 우리는 바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물결이 바다로부터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듯이 우리 또한 전체의 하나 됨으로부터 벗어 난 적이 없다.



그대는 자신이 바다라고 느껴지는가? 우리가 자신이 바다임을 확신한다면 좋은 물결이 되거나 더 큰 물결이 될 필요가 없다. 왜 잘 난 내가 되어야 하고, 잘 되는 내가 되어야하는가? 실체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스스로의 실체를 잃어버리고 자신이 물결이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남들과 다른 더 큰 물결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티끌만한 아무리 작은 것에도 전체라는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있다. 작은 것과 큰 것이란 원래 없다. 그것은 단지 인간이 만든 개념의 만물일 뿐이다. 바다가 물결이고, 물결 안에 바다가 들어있다. 의식 속에서 우리가 우주와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과 개념이 떨어지면 진실은 저절로 드러난다.


경전을 보고, 가르침을 듣고, 방법을 배우는 것은 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쌓는 일과 같다. 달이 아닌 손가락을 보는 것이다. 참선, 깨달음, 수행, 명상이라는 계속된 개념에 우리는 길을 잃기 쉽다. 아무리 많은 책을 봐도 그것은 개념이고 지식이기 때문에 진실한 자신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을 만나는 과정에서는 자기만의 진실을 비추어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것을 외면의 스승이라고 한다. 외면의 선생은 내면의 선생을 보여준다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가 불편하다면 우리는 진실이 아닌 어떤 것을 붙잡으려고 애쓰고 있거나 싫은 것을 저항하고 통제하고 있음이다.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냥 그때그때의 조건과 인연에 따른 반응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에 자기만의 해석을 붙이면 업식이 된다. 업식이 없는 반응일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바람이 부는데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나무가 흔들리지 않고 버티고 서 있으려고 하면 나무는 불편해진다.



가 하고 싶은걸 막고 있는 게 무엇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에 따른 적절한 반응을 반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경험이 만든 업식의 반응을 따라가면 문제가 일어난다. 조건과 상황과 맞지 않는 반응이 고통이다. ‘(업식)’가 빠지면 적절한 반응이 일어난다. ‘라고 하는 정체성과 자기 동일시가 업식이. 업식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 중의 하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표현은 왜곡된 생각이 만든 억압된 감정들을 풀어놓아 흐르게 한다. 억압된 무의식의 생각과 감정을 흐르게 하여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삶에서 적절한 반응들이 잘나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왜곡된 마음의 구조(자기식의 프로그램)는 적절한 반응을 해야 할 때 엉뚱한 반응이 하게 된다. 거꾸로 반응하는 것이 고통이다. 반응이 적절하면 상황에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함께 돌아가게 된다.



살면서 어떤 상황이 일어나면 우리는 거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붙인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보면 자기가 만든 의미의 삶이기도하다. 어떤 것을 할 때 좋다는 것을 느끼면 거기에 발목 잡혀서 그렇게 되는 것에 집착한다. 하지만 집착을 내리면 모든 것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반응이 있을 뿐이다. 좋은 것도 하나의 상이고, 찝찝한 것도 하나의 상이고, 그냥 실체인 하나만 있을 뿐 모든 것은 개념이 만든 상일뿐이다.



만들어진 ’, 업식의 가 바로 에고이다. 에고의 특징은 욕구의 추구이다. 에고에게 욕구하는 것을 쉬는 것은 죽는 것과 같다. 에고는 추구를 멈추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목표를 만들고 의미를 추구하면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느낀다. 하나를 이루면 다음의 목표가 필요하고, 또 다시 다음.. 다음.. 하면서 에고는 확장되고, 살아있는 느낌에 신이 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에고에게 너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면 견뎌내지 못하고 미치려고 한다. 이것이 에고의 특성이다. 에고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을 미래로 투사해서 더 나은 미래라는 환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에고가 없는 곳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이다. 에고의 세계는 실체가 아닌 의식이 투영한 환영이다. 에고는 생각을 먹고 살기에 생각을 쉬면 에고 또한 쉬게 된다. 업식의 는 곧 생각의 이다. 생각을 쉬는 방법은 감각, 느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은 없다. 자신이 바로 전체이다. 생활 속에서 상황 속에서 내 앎을 적용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마음공부이다. 생활을 비춰보고 삶과 함께 자유로워져야한다. 삶과 동떨어져 있는 자유는 진실한 자유가 아니기에 무조건 삶은 그것을 깨어지게 한다. 삶이 바로 바다이며, 내가 물결이라면 우리는 삶속에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 물결과 바다가 따로 노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 바로 분열이자 분리감이다.



삶은 바로 기회의 장이자 열림의 장이다. 오늘은 내안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하며 이것도 한번 시도해보고 저것도 시도 해보는 마음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삶속에서 치고나가고 자유로워지면 그것이 진짜 자기 업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마음과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어디에서 왜곡 되어 있는지를 알고 그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함이다. 우리는 삶을 이길 수 없다. 삶은 바로 바다이기 때문이다. 삶은 이길 수 없으나 우리는 자기 생각이 만든 환영의 어리석은 이길 수 있다.



삶을 사는데 잘 살고 못 살고는 없다. 어떤 경험이던 그 경험을 수용과 받아들임으로 있느냐와 일어나고 있는 것과 싸우고 있느냐, 그것밖에 없다. 이왕이면 일어나고 있는 것과 싸우지 마라. 그때 일어난 것은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이 최선을 다 한 것이다. 원하는 만큼의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느낌이 그 자체이고 행복이다. 어떤 생각 속에서 좀 더 완전한 것을 추구하다보면 거기서 판단 평가가 나온다. 그 판단 평가가 우리를 힘들게 만든다.



너무 오랫동안 노력하는 업식으로 살아왔기에 놓는 것이 잘 안 된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미세한 부분이 아닌 전체와 함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삶과 함께 하는 가장 쉬운 훈련이 내쉬는 숨과 함께 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내쉬는 숨에서 집착하고 긴장하는 모든 것을 비우고 이완할 수 있다. 생각이 나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면 버려야 한다. 또 올라오면 내쉬는 숨과 함께 또 버리는 훈련을 반복한다. 반복하다보면 그것의 비밀을 알게 된다.




상대의 눈 바라보기 훈련


1. 눈과 함께 마음의 의식이 밖으로 나간다. 심장을 보아라. 의식을 나에게 두고 상대를 보아라. 그러면 상대의 눈을 보고 있지만 심장에서 떨어져서 보고 있다.



2. 다음에는 심장을 이완하면서 자기느낌 속에 머물면서 모아라. 그러면 밖에 있는 풍경이 나와 떨어져서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눈으로 보면 의식이 눈에 붙어서 같이 나가버린다. 이것을 집착이라고 한다. 우리의 감각은 모두 대상이다. 그래서 보는 훈련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3. 내 안에 있는 느낌을 가지고 사물을 접속을 하게 되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사람과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를 흔들 수 없게 되는 중심자리가 잡힌다. 사람들이 힘든 것은 자기의 중심이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흔들리는 작용이 되어서 그렇다. 그래서 듣기를 할 때에도 나에게 중심을 두고 들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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