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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소통의 시대에 필요한 자질....

조회 수 969 추천 수 0 2017.08.20 11:22:47

삶은 관계입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한다는 것은 상대와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우리가 누군가와 만남을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상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만남은 상대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대와 소통이 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만의 생각이나 감정, 기준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력과 정보가 부족하면 소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통은 상대의 것을 알고 내 것을 그것에 맞출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만약 상대에 대해서 모른다면 일방적으로 자신의 욕구나 입장만을 표현하기 쉽습니다. 이럴 경우 만남은 전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혼자만의 생각과 감정에 빠져 행동하는 사람은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과정은 결국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자신과의 만남도 같습니다. 자신의 것을 잘 알아야 자신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은 붙잡고 싫은 것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만나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관계는 결국 나 자신과의 관계를 외부를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가? 나의 삶은 지금 어떠한가?... 내가 지금 생각하고 바라보는 세상이 바로 나의 세계이며, 자신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가 바로 그 사람의 현실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상황과 사람에 대해 자신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배움의 초기단계에서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론이나 관념, 지식들을 많이 습득해서 그것을 가능한 한 정확하고 빠르게 배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공부방식을 통한 지식에 함몰되면 자신의 현실과 분리되기 쉽습니다. 타인이 생산한 정답과 해결책은 상황에 참고는 할 수 있어도 실제 자신의 현실과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살아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배우는 공부는 정답이나 해결책이 아닌 질문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질문에는 자신이 알고자 하는 실제적이고 살아있는 문제들이 들어있습니다. 질문이 없는 사람은 어쩌면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기 보다 정답만을 찾으려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은 상황마다, 사람마다 그때그때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해서 사랑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단어와 개념 그리고 이론과 관념들은 실제의 그것을 알게 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기만의 경험 속에서 자기만이 아는 사랑은 있습니다. 그 사랑은 자신만의 경험이기에 그것을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경험을 조합하여 사랑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사람마다 그 사랑의 느낌과 모양과 형태와 색깔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인류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불확실성의 시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과거 입자물리학과 고전물리학에서는 진리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자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모여서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서 물질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등과 같은 변하지 않는 물리세계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이 나오면서 고전물리학의 이론은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질이라고 생각 했던 것이 곧 파동이 되고, 파동인 것 같은데 그것이 곧 입자였습니다. 이제는 어떤 것에도 고정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들어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와 현실적인 패턴은 아직 과거의 틀에 고정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양도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모든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묵살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움직인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의 등장으로 인간도 개나 원숭이처럼 지구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생명의 원리에 의해서 인간도 다른 생명처럼 진화하고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종교의 차원에서는 아직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우리는 너무나 인간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사물과 관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21C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것이 진리이다.’ 라고 할 어떤 고정된 것이 없는 의식의 변혁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깨달음과 진리가 무엇일까요? 불교의 경전 반야심경에는 ()이 곧 색()이고, ()이 곧 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라고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깨달음이나 진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깨달았다는 것은 무언가를 얻거나 가진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다원주의의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다원화되고 분리된 각각이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문명 속으로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이 내 것이 옳고 상대 것은 틀렸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 존중되어야 하고 서로 이해되어야합니다. 서로의 관계에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커기 때문입니다. 자기식이나 기준이 커질수록 상대에 대한 이해는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이제 ''를 열고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소통의 기본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표현할 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식으로 코끼리를 만지고, 불교는 불교식으로, 카톨릭은 카톨릭 식으로 코끼리를 만집니다. 누군가가 코끼리를 만진다는 것은 그 사람만의 경험에 따른 감동과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체험한 경험과 감동은 그 사람의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진리라고 이야기하거나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와 분쟁을 야기합니다.

 

우리는 이제 다원주의와 통합의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틀린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옳습니다. 우리는 삶을 옳고 그름의 분별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경험해 나가야합니다. 그 경험 속에 우리의 행복이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일어나는 감동이 바로 경험자체입니다. 경험에는 잘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경험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두려움은 옳고 그름으로 내가 혹시 잘못 하거나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새로운 경험에는 어떤 길을 걷더라도 그것이 정답입니다. 명상을 공부하는 것은 삶을 대하는 이런 태도를 가지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태도가 바로 우리의 인생이고 삶의 가치입니다. 다원화된 사회는 서로의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며,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는 사회입니다. 인생에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그냥 서로 다른 뿐입니다.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생명은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 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가 있다는 것은 또한 생명 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말과 같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모든 생명의 진화는 ()'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제 모두가 행복해지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겨났습니다. 과거에는 이 세상이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저 세상에 가서 행복하려고 종교에 많이 의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이 과거보다 덜 고통스럽고 좋기 때문에 종교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만남에서 시작합니다. 만남은 상대에 대한 앎과 이해에서 나옵니다. 서로 잘 알고 이해가 많을수록 좀 더 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소통은 기본적으로 자기 것에 대한 비움이 중요합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닌 자신의 것을 더욱 확장하려는 관계는 소통이 아닌 힘의 논리에 의한 만남이 되고 맙니다. 강자와 약자의 만남이 됩니다. 강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면 결국 상대는 피해자가 되거나 만남에서 소외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만남을 가지는 자신의 태도를 바로 보아야합니다.

 

삶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가 바르게 확립되면 우리는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자신의 태도가 확립되지 않으면 우리는 사회나 주변에서 들어왔던 다양한 정보들이나 사회의 기준과 관념에 영향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기준과 관념에 휩싸여 있는지 스스로를 탐구해야 합니다. 탐구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키워줍니다. 탐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질문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진실을 발견합니다.


영어로 대화를 Dialogue라고 합니다. 이것은 나의 논리와 상대의 논리가 서로 만나가는 과정입니다. 스스로 모든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실로 강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대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그가 자기의 기준이나 생각에 완전히 빠져있거나 두려움으로 마음에 벽을 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만의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입니다. 소통은 대화입니다. 자기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자기의 논리와 감정과 생각들을 적절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한 기본을 잘 다진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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