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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끊임없이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사건, 문제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저런 일이 생기더라도 사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의식이 꾸고 있는 꿈과 같다. 우리가 진실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자신이 꾸고 있는 꿈임을 알면 우리는 꿈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꿈을 즐길 수 있다. 습니다. 깨어난 사람은 자신이 꾸는 에고의식의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고의 꿈속에서 살다가 꿈속에서 죽는다. 한 번도 에고의식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악몽 속에서 잠꼬대를 하거나 좋은 꿈이라고 웃으며 꿈을 유지하고자 한다. 깨어난 사람에게는 악몽도 좋은 꿈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꿈이든지 깨어나면 꿈이니까 아무 일이 없다. 꿈의 다른 이야기는 동화 속의 마법에 걸림과 같다. 잠든 백설공주도, 개구리로 변한 왕자도 꿈에서 깨어나는 요인은 진실한 사랑이다.

 

진실한 사랑이 뭔지를 우리는 두려움의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진실한 사랑은 무엇을 행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는 의식상태이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있는 항상 있는 그대로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견해와 관점과 판단들이 꿈을 만들어 낸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기대가 있고, 그것들에 의미를 붙이고,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집착하는 내면의 의식들이 투명해지면 일어나는 일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아무 문제가 없는 그냥 작용의 흐름일 뿐이다. 문제는 붙들고 있는 의식의 모양이 만든다. 이렇게 되어야 해라는 기대가 문제를 일으키고, 상황을 판단하는 견해와 관점이 꿈을 만들어 낸다. 이 속에서 우리는 무서운 꿈이 아닌 편안하고 좋은 꿈을 꾸기를 바란다. 종교는 교리와 신앙으로 좋은 꿈을 만들고, 도덕과 윤리는 그것을 잘 따르면 좋은 결과라는 최면의 꿈을 준다.

 

우리는 살아있음과 삶의 진실에 깨어나길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자각해야한다. 스스로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으며,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이렇게 보고 있는지 비추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영성이라 한다. 신앙은 영성이 아니다. 영성은 종교와 상관이 없이 철저히 자기의식의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이다. 무엇을 자기라고 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깨어남은 시작된다.

 

예를 들어 자각의 관점에서 삶을 볼 때 우리는 때로 힘든 경험 속에서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어?’, ‘내가 너를 믿었는데 너는 왜 나에게 이렇게 해?’ 하지만 자신을 자각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대를 진실로 믿는다면 그런 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믿었다면 우리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믿어야한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믿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쉽게 불신을 던진다. ‘나를 힘들게 하면 믿을 수 없어이것이 그에겐 진실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을 믿을 뿐이다. 자신의 판단과 견해의 꿈을 믿는다. 배신이란 그 사람이 우리에게 한 어떤 행동이 아니라 감히 우리가 믿는 판단과 견해를 깨어버린 것에 대한 자기평가일 뿐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판단과 견해가 형편없었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견해가 틀렸고, 문제가 많음은 보지 않고 이것을 밖으로 던져서 네가 나한테 어떻게 감히?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어? 이렇게 할 수 있어?’라고 전도몽상 한다. 자각은 삶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지만 기대와 욕심이 붙들린 마음은 꿈을 꾸게 한다. 판단과 기대의 꿈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꿈속에서 자신을 문제시하거나 상대를 탓하면서 악몽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회광반조하여 자신이 어떤 꿈을 꾸는지 보아야한다.

 

꿈들은 수많은 생각과 집단의식의 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순수한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아직 모른다. 생활명상은 스스로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진정한 나는 무엇을 원하는 가. 나는 성장하고 깨어나고 진실로 행복해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무언가를 성취하고 성공하는 꿈을 원하는가? 기대가 바람대로 되길 바라는가? 안전을 원하는지 아니면 자유를 원하는지? 진실한 행복을 원하는지 현실의 편안함을 원하는지? 명상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고, 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상업적인 광고와 천박한 성공신화에 최면되어 자신이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기계처럼 살아간다. 우리의 심장은 살아있지 못하고 우리의 감정은 두려움과 걱정에 닫혀간다. 생활명상은 이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자각하고 질문한다. 스스로 일으키는 한 생각이 세사을 어떻게 다르게 보게 하는지를 알게한다.

 

세상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일어나는 일들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기대가 그러했고, 관점이 그러했고, 기준이 그러했을 뿐임을 알면 외부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 삶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만일 그것은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기대였고 집단의식의 바램이라면 우리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배움과 자각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한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꿈과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질문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는 것을 불교에서는 화두라고 한다. 화두가 깊어지면 의심이 의정이 되어 가슴에서 단단한 막혀서 떼지도 삼키지도 못하게 된다. 자나 깨나 그 상태에서 계속 있다 보면 의정은 어느 순간 의단이 되어 자나깨나 살아있게 된다. 그러다가 의단이 깨어지는 순간이 올 때 깨달음이라고 한다.

 

화두는 의심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이 의심을 하지 않으니까 억지로 의심하게 하려고 질문을 인위적으로 준다. ‘달마가 동쪽에서 온 이유, 똥 막대기, 뜰 앞의 잣나무...’는 사실 마음이 무언가. 나는 누구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와 같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진실한 자기질문을 해야 한다.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왜 자신은 힘든지, 자신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일어나는 의문을 던져야한다. 자기만의 질문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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