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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선사의 한손가락 '선'...

조회 수 1096 추천 수 0 2016.12.03 16:29:19

무문관(無門關)이란 것은 중국에 송나라 때 무문(無門) 혜개라는 사람이 그때 당시에 내려오던 선사들의 여러 화두를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무문관의 3장에 보면 구지의 한 손가락 선에 대한 화두가 나옵니다. 구지스님은 당나라 시대 때 유명한 선사입니다. 그는 절의 주지였으며 불경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불교공부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칭송을 많이 받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한 비구니스님이 찾아왔습니다. 삿갓을 쓰고 "주지스님 뵈러왔습니다." 하며 구지스님을 만나자마자 비구니스님이 갑자기 구지스님의 주위를 3바퀴 돌고나서 다시 절을 했지요. 그러면서 구지선사를 보면서 얘기를 합니다. "당신이 한마디를 하시면 제가 삿갓을 벗겠습니다."라고요. 구지스님은 불경공부는 많이 했는데 갑자기 여스님이 나타나서 자신의 주위를 뱅뱅 돌고 절을 하면서 한마디를 하라고 하니 갑자기 말문이 막혔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계속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여스님이 '별거 아니군' 하는 느낌으로 바라보는데 엄청 쪽팔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구지스님은 여스님에게 밤이 깊었는데 오늘 하루 절에 묵고 가길 권합니다. 하지만 여스님은 "한 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내가 절에 묵을 게요" 합니다. 또 다시 구지스님은 말문이 막히고 여스님은 그냥 가버립니다. 구지스님은 그래도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마디도 못한 자신이 부끄럽고 막막하여 절문을 닫고 자리에 누워버립니다.



여승이 구지스님에게 한마디를 해라고 했을 때, 이 여스님은 어떤 말을 하기를 기대했을 까요? 여스님이 듣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구지스님에게 요구한 것은 그동안 자신이 공부한 자기만의 살림살이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자기가 뭘 공부했고, 자기가 어느 수준에 있고, 그걸 한마디로 보여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구지스님이 당신이 아무 말도 안 하니 이 스님은 별거 아니다. 공부한 스님이 아니다'라고 비꼰 것과 같습니다.



이때 '공부한 스님이 아니다'는 뜻은 자기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 남의 것.. 경전을 읽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것을 배우고, 자기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자기만의 것이 있는 사람은 어디가나 당당합니다. 어디가나 기죽지 않고, 어디가도 자기 것을 탁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근데 자기만의 살림살이가 없는 사람은 어느 순간이 되면 꺾여버립니다.



무문이라는 불교의 선사는 사람들에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을까요? 부처님이 가섭에게 무얼 전했을까요? 진정한 법이란 무엇을 일까요? 가르침을 받으러 온 제자들에게 선사는 무엇을 전해주고자 했을까요? 선생이 배우는 사람에게 전수 할 것은 원래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배움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가 가진 것을 발견하도록 비춰주거나 확인시켜주는 것이 선사의 역할입니다.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그냥 부처님이 꽃을 들어 비춰주고 확인시켜주었을 때 가섭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빙긋이 웃습니다.



그렇듯이 선생은 우리 안에 자기 있는 그것이 확인해 주는 거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그럴듯한 말이나, 좋은 어떤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구지스님은 그동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승의 한마디 말에 박살이 납니다. 자신의 무지가 드러납니다. 그럴듯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실로 자기 것이 없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자리에 누워버리고 절문을 닫아 버립니다.



계속 그렇게 날마다 상심하고 있으니 소문이 났어요. 그 이야기는 여스님의 스승인 천룡선사에게 들어갑니다. 천룡선사는 여스님을 야단하고 구지스님을 찾아갑니다. 그때 시종 한명이 있다가 이 절은 문을 닫았습니다. 구지스님은 이제 내방객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청룡선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구지스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이 말을 듣고 구지스님이 막 달려 나와 모시고 방에 들어가 앉았어요. 그리고 뭣 때문에 절의 문을 닫게 되었는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쭉 얘기를 합니다. 이야기를 다하고 나니까 천룡선사는 그렇다면 그여승이 던진 질문을 자신한테 물어 보라고합니다.



그러니까 구지스님이 딱 정색을 하고, 천룡선사의 주위를 세바퀴 돌고나서 절을 하며 "자 한마디 해 주세요."했습니다. 그때 청룡선사가 말없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세웁니다. 천룡이 손가락을 척 세우자 그 순간 구지선사는 실체를 딱 깨닫게 됩니다. 깨닫고 나서 구지스님은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부처가 뭡니까, 마음이 뭡니까, 도가 뭡니까' 물으면 엄지손가락만 세웠습니다. 그래서 구지스님의 선을 "일지선"이라고 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법을 보여준"라는 뜻입니다.




엄지손가락만 세우는 이게 뭘까요? 청룡선사 이렇게 했을 때 구지스님이 깨달았다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게 뭐야?" 했을 때 이미 생각이 돌아가고 진실로부터 천길만길 멀어집니다. 구지스님의 밑에 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구지선사가 출타를 했습니다. 그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법을 물으러 찾아왔습니다, 법문을 들어보려 왔습니다. 그때 제자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보며 구지선사의 법을 그대로 자신이 전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선생의 자리에 앉아 물어보라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뭡니까?', '도가 뭡니까?' 물으니 제자는 선생이 했듯이 똑같이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웁니다. 그렇지만 구지가 이렇게 하는 것과 제자가 이렇게 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똑같은 동작이라 해도 전혀 다릅니다. 법은 손가락이 아닙니다. 구지선사가 출타에서 돌아와 제자에게 있었던 일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선생에게 배운 것을 마치 자기 것인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써먹습니다. 자기가 그것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아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만의 진실을 알아야 되지, 지식을 몇 개 듣거나, 본 것, 들은 것은 아는 게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구지선사는 제자의 말을 듣고 자신이 물어 볼 것이니 제자가 다시 한번 해보라고 합니다. '도가 뭡니까?'하고 물으니 제자가 엄지손가락만 지켜 세웁니다. 구지선사는 몰래 칼을 숨겨두고 있다가 그 순간에 손가락을 잡고 딱 잘라버립니다. 팍 손가락이 잘리면서 피가 나고 제자는 울면서 도망을 갑니다. 그 순간 구지선사는 제자를 부릅니다. 아파가 가는데 이름을 부르니 가다가 제자가 딱 돌아보니다. 그때 구지선사가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웁니다. 그 순간제자는 깨닫게 됩니다.



구지의 손가락을 우리는 선이라 합니다. 화두라고도 합니다. 여러분 이 뜻을 알면 청룡이 손가락을 세웠을 때 구지가 뭘 알았는지 알 것입니다. 구지는 마지막 죽을 때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옛날 청룡한테 '일지선' 하나 배웠는데, 평생을 써먹어도 다 못 써먹고 가는구나"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자기만 것이 하나가 생기면 평생을 써먹어도 그것은 부족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것이 없습니다.



내 것이 없이 완전히 대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남의 것에만 관심을 보이며 사는 사람입니다. '남이 뭐라고 할까?, 남이 어떻게 볼까?' 매일 남의 얘기나 외부를 얘기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중생이라 합니다.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이지요. 그나마 조금 "내 것이 뭘까?, 나는 뭔가?"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가 무엇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이 일어나며, 그 감정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알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외부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이 적습니다.



우리 안에는 진짜 "", 내가 동일시하고 있는 나가 아닌, 구지선사가 발견하고, 부처님이 발견하고, 수많은 인류가 발견한 "자기만의 것이" 우리안의 안에 있습니다. 어떤 그럴듯한 행동이나 외적 조건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모두가 허망합니다. 외적행위는 끝임 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져갑니다. 우리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진정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의식이자 마음입니다. 우리는 순수의식입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모든 것은 의식 자체입니다. 마음이라 했을 때 이것은 개인으로써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경험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습니다. 존재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지만, 작용하는 개체로 돌아오면 각자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각자 생명력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에너지의 특성을 가지는 우리만의 존재를 순수의식이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서로 배워가고, 서로 만나가는 것을 사랑이라 합니다. 선에서 하고 있는 화두와 심리와 명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적으로 좀 더 성공하고, 인정받는 것은 좋지만 그것보다는 여러분의 자기만의 것, 내 것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당당하고, 기죽지 않고, 자신을 쓰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는 생활명상의 공부입니다. 그것은 저 바깥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와 상황을 통해 내 것을 비춰보는 공부입니다. 내안에 뭐가 일어나는가를 보고, 상대를 통해 내 것을 배우는 공부입니다. 우리가 있는 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자기를 비추기 위해 있습니다.



삶에 일어나는 것은 내 마음을 비우는 공부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일어나든지 아무문제가 없습니다. 삶이 불편한데 무조건적으로 잘 지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순간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느끼고 함께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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