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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과 망치가 서로 만나면 소리가 납니다. 두 사람이 서로 관계를 가지면 은연중에 소리가 나기 마련입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만히 있는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신을 망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성속에서 종만 있어도 소리가 나지 않고, 망치만 있어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종을 라고 생각하면 망치는 대상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와서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렸다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소리가 난다는 것은 이것(주체)과 저것(객체)의 만남이 있어야만 소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대상)도 아무 소용이 없고, 저것만 있고 이것이 없으면 아무 작용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계성 속에서 이것과 저것의 자연스런 만남에 의해 소리가 일어날 뿐인데, 일어난 소리에 생각으로 많은 해석을 넣습니다. 망치는 망치대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이고 종은 종 나름대로 해석을 붙입니다. 사실 해석을 빼면 일어난 것은 소리일 뿐이고, 상대와 자신과의 인연에 의한 만남일 뿐인데 말입니다. 해석은 많은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이것은 좋은 소리, 저것은 나쁜 소리와 같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저것이 나에게 와서 나에게 부딪혔어, 나를 힘들게 해, 나를 치게 만들었어.. 등등 여러 해석을 만듭니다.

 

소리와 같이 감정도 똑같습니다. 감정은 인연의 부딪힘으로 인해서 잠깐 일어났다 사라지는 에너지의 흐름일 뿐입니다. 몸에 손이 닿으면 낌이 일어납니다. 주변의 사물을 눈으로 보면 있으나, 눈을 감으면 없어집니다. 만지면 느낌이 일어나고, 놓으면 모든 것은 다시 사라집니다. 어떤 음식의 맛을 보더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혀에서 느끼는 맛은 없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이 지나갔는데도 계속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그것에 구속되어 새로운 경험을 느낄 수가 없게 됩니다.

 

명상은 화나 불안과 같이 어떤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습관적으로 붙이는 자기만의 이야기만 빼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빼면 모든 것은 그냥 소리, 냄새, 느낌자체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있는 그대로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집어넣습니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우리가 만든 스토리 때문입니다. 그 스토리가 바로 모든 고통의 원인입니다. 스토리는 의식의 장난이자 유희일 뿐입니다. 모든 것은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그냥 그러합니다. 일어난 것에 대해 생각으로 이야기를 그만 만드는 것이 명상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것은 모두 다 자기만의 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망상은 개념으로 지은 이야기들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듯이 객체와 주체는 실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났다 동시에 사라지는 동일체의 서로 다른 관점일 뿐입니다. 모든 것은 바로 의식의 산물입니다. 그대의 입장에서는 그대가 주체이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내가 주체가 됩니다. 그럼 누가 진짜 주체일까요? 주체는 고정되어 잇징 않습니다. 모든 것은 동시에 그냥 일어났다 동시에 사라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면 나와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봄이라는 행위만 있을 뿐입니다. 주체도 없고 대상도 없습니다. 그냥 그 순간에 일어나는 그것만이 있습니다. 순간의 경험만이 있습니다. 순간순간 경험을 하고 놓아버리고.. 또 새로운 경험, 또 새로운 경험을 한다면 우리는 계속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경험을 하고 계속 그 경험에 집착되어있으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삶은 살아있지 못하고 자기생각의 망상에 갇힌 것입니다. 순간순간 살아있는 새로운 경험으로 나아가야하는데 자기생각에 빠져서 스토리 속에서 살게 됩니다. 자신만의 스토리 속에서 지지고 볶고 오만 것을 다하지만 실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꿈과 같습니다. 생각의 꿈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꿈에서 벗어나서, 지금 있는 이 생명, 이 소리, 이 느낌...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들은 몸이 있으니 감각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감각은 자신이 초점을 맞춘 것이 표면으로 드러납니다. 눈과 귀, 코와 감촉, 맛과 같이 모든 것들은 동시에 일어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의식의 표면에 나타납니다. 소리를 인식하면 소리가 앞으로 나오면서 다른 감각들은 뒤로 빠집니다. 생각의 감각에 빠져 있을 때 소리를 인식하면 소리가 의식의 표면으로 드러나고 생각의 감각은 뒤로 빠져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디에 인식의 초점을 두는지에 따라서.. 어디에 동일시하고 집착하는가에 따라서 의식은 그것과 함께 표면으로 드러납니다. 소리를 붙잡으면 소리가 내가 되고, 맛에 집착하면 나는 맛으로 들어갑니다. '' 동일시하고 붙잡는 쪽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집착한 그것이 마치 리얼한 현실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여기에는 잘하고 못하고,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개념으로 만든 것입니다. 깨어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들은 어느 날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은 이 세상이 개념위에 서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험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만든 제일 기본적인 개념은 뭘까요? 그것은 아마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이 아닐까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시간이란 원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 미래, 현재는 개념의 산물입니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자신이 과거에서 미래로 계속 지속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내가 있다는 형상을 유지 시키려 공간의 개념이 만들어집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개념의 밑바탕에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없습니다. 자신의 의식 속에서 무언가가 하나 변하면 자신이 만든 모든 세상이 다 변합니다. 나비효과라는 영화에서처럼 어떤 사람이 과거의 자기행동을 하나 바꾸면, 미래에서 모든 삶이 전혀 다르게 바뀌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의식이 바뀌면 이 세상은 다 바뀝니다. 그러기에 바깥에는 바꿀 것이 없습니다. 지금 소리를 보고 있는 것은 의식 곧 마음입니다. 있는 것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마음은 하나의 마음만이 있는 것이지 내 마음이 따로 있고, 네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 내 감정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그것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야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생각과 감정은 내 것 아닙니다. 생각과 감정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 그것에 집착해야 할까요? 그러면 우리의 참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 모든 것들이 다 일어났다가 사라질 수 있는 그 배경이 바로 우리자신입니다. 스크린이라는 배경이 있어야 영화가 상영됩니다. 무대가 있어야 배우들이 오고갑니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어떤 감정도, 느낌, 생각, 소리도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실체는 전체를 그냥 알아차리고 있는 무엇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깨어있음, awareness 라고도합니다.

 

우리의 고통은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오해에서 일어납니다. 자신을 무엇인가와 동일시하는 그것이 바로 문제를 만듭니다. ‘라는 특별한 정체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뭔가 좋아져야한다, 잘되어야한다, 나는 뭔가 더 당당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한 집착이 문제를 만듭니다. 어떤 면에서 인생이 힘든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불안과 분노가 많은 사람도 어쩌면 집착이 많은 사람입니다. 힘들어도 그들은 자신이 붙들고 잇는 것을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집착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기에 그것을 놓는 다는 것은 자기 존재가 없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익숙한 자신이라서 어떤 순간이 되면 다시 불안을 일부러 만들어서 그것으로 돌아가려합니다.

 

명상은 뭔가 거창한 것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상은 어떤 것이 일어나면 그것에 붙들려서 집착하지 않는 상태로의 전환입니다.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화를 내더라도 금방 없어지고, 불안이 와도 집착하지 않으니까 사라집니다. 눈이 있으니 사물이 보이고 귀가 있으니 소리가 들립니다. 보이고 들리지만 그것에 현혹되지 않는 상태가 명상입니다. 감각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을 붙들고 있지 않습니다. 감정은 일어나지만 그것에 빠져 있지 않고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합니다.

 

생활명상은 삶의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리얼하게 경험하게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실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이야기만 경험할 뿐입니다. 생각이 놓이고 마음이 열려서 보면 삶은 전혀 다른 경험이 됩니다. 그 살아있는 경험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불안할 때 불안한 것이 사랑입니다. 불안과의 만남이 바로 사랑자체입니다. 화가 날 때 그 화를 만나는 자체가 사랑입니다. 우리가 배운 개념에서는 화와 불안은 나쁜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어나는 모든 것에 분별이 빠지면 모든 것은 사랑이 됩니다.

 

알아차림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입니다. 명상은 자신을 알아차리고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하고 있구나를 그냥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러면 마음에 여지가 생깁니다. 마음에 쉬는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이 커질수록 점점 편안해집니다. 나는 이런 게 잘 안되는 사람이야, 나는 원래 집착이 심한 사람이야... 이렇게 자신을 붙잡아버리면 그 개념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한계입니다. 한계는 원래 없습니다. ‘나는 노래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됩니다. ‘나는 춤을 잘 못 추는 사람이야.’ 라고 자기 한계를 지으면 진짜 춤을 못추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생각의 감옥 속으로 밀어놓고, 그 감옥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다 환영입니다. 꿈속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실우리는 의식이 없으면 자신도 없습니다. 의식에 어느 순간 라는 인식이 나타나는 순간에 모든 대상들도 확 나타나버립니다. ‘라는 것은 와 다른 것과의 분리감을 만듭니다. 하지만 원래 분리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의식의 유희일 뿐입니다. 현실이라는 것도 의식이며, 의식에서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의 꿈, 절망.. 오만 것을 다 만들어 냅니다. 그 게임의 세계에서 우리는 왕이 되기도 하고, 뭐도 되고 다 하지만 그 게임이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움직임은 에너지의 작용입니다. 그냥 에너지의 작용에 의해서 움직이고 사라지는 것이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사람의 삶도 에너지의 작용이 있을 뿐입니다. 에너지의 작용으로 형상이 만들어지고, 에너지가 작용하면 살아있는 거고, 에네지가 빠져버리면 죽어버리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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