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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의식에서 용서는 없다.

조회 수 1175 추천 수 0 2021.12.10 09:28:23

1. 바른 의식에서 용서는 없다

 

여러분은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무엇에 초점 맞추나요? 저는 자신의 내면을 비추고 또 비추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놓은 비합리적인 생각, 다른 이의 마음 한 조각 담지 못하는 좁디좁은 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걸 알아차려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그 과정에서 외부에 대해 문제 삼을 것은 깃털 하나만큼도 없음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2. 좋은 것만 붙잡고 싶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를 푸는 주체인 자신과 대상에 대해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번 키워드 용서에서 이걸 적용해 보겠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 ‘지기(知己)’에 대한 것입니다.


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의 성별이 구분되고, 부모가 생기고, 이름이 붙여지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설정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생기고……무수한 과정을 통해 세상의 무엇인가를 자신이라고 붙잡습니다. 그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는 붙잡고 싶은 것이 있고 붙잡고 싶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옳고 좋은 것은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고, 옳지 않고 좋지 않은 것은 자신의 것이 될까 봐 엄청나게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혹시라도 관계 속에서 자신이 옳지 않은 것이 되었을 때 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외부를 오히려 잘못된 것으로 몰아가면서 자신은 옳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명백히 드러나도 그것을 희미한 그림자 정도로만 인정합니다. ‘라는 중심성이 너무도 확고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는 대부분 이런 모습인데 이걸 자각해야 합니다.

 


3. 중심자리에서 온전히 책임지는 삶


이제 제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위의 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저는 제 삶의 모든 것이 나의 주관적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외부의 어떤 것이 내게 영향 미쳤다는 의식, 바깥의 어떤 것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한다는 의식이 없습니다. 오로지 내 세계에서 나온 내 이야기와 내 것만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책임을 외부로 던지지 않습니다.


때로 상대와 의견이 달라 싸울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의견을 충분히 말하고 상대도 상대 의견을 열심히 말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한다.’ 또는 네 의견은 잘못되었어.’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내 세계에서 내 것을 말했고 상대는 상대 세계에서 상대 것을 말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싸움이 끝나면 아무런 찌꺼기가 남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치열히 주장하며 삶의 순간을 살았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을 향해 서 있습니다. 그러니 아마 제가 여러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보고 있는 를 보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을 보고 있다면 의식이 바깥으로 나가서 대상에 가 있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늘 내 중심, 내 주관에 머물러 말하고 행동합니다.


여기 꽃이 있는데요, 꽃이 예쁘다는 말을 제가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 그럼 꽃이 예쁜 것일까요? 내 마음이 꽃을 예쁘다고 보는 것일까요? 대상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은 꽃이 예쁘고 안 예쁜 것을 시비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중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꽃을 예쁘다고 보는 마음을 봅니다.

하루를 살면서 마주치는 것마다 좋고 싫음이 일어나지요?


하지만 저는 분별과 시비로 좋은 것 안 좋은 것을 잡지 않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 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그 모양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가 납니다. 그것 속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사람의 고유함을 보는데 그냥 사랑스럽습니다. 분별없는 속에서 사랑, 미움, 화는 자유자재로 쓰이며 막힘없이 흐릅니다.

 


4. 아직은 그림자로 존재하는 상대


자신을 들여다보았으니 이제 키워드를 다루어보겠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자기 중심성에서 바라본 용서는 어떤 것일까요? 흔히 용서를 놓는 것, 역지사지, 받아들임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는 비유하자면 건강을 해치는 행동을 많이 한 후에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잘못이 있었고 그 후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애초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내가 존재하듯이 상대도 존재한다, 내 생생한 입장이 있듯이 상대의 생생한 입장도 있다.’ 이걸 놓친 것입니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머리 한구석에 아주 작은 생각으로만 있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상대를 없다고 여기는 것, 상대에 대한 무시입니다. 상대가 없는 속에서는 당연히 자기 입장만 있습니다.


자신은 항상 그럴만했고 정당하고 피해를 받았습니다. 상대는 그래선 안 되는 행동을 하며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자동으로 굴러가는 생각 중에 아차하며 잘못된 것을 알아차려 회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용서입니다. 내 입장을 놓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고, 상대와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는 것이지요.

 

 

5. 내가 존재하듯 상대도 존재한다


한 사람의 의식이 바로 서면 우주 전체가 바로 선다고 합니다. 그만큼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용서에서도 의식을 바로 세우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 바른 의식에 접근해 보겠습니다.

 

10대 때부터 저는 인간의 선함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랑과 이해 속에 사람들을 모두 안고 가려는 원을 세웠지요. 그런데 그런 서원을 품고도 도저히 봐줄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노상방뇨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으로서 왜 저런 행동을 하지? 너무 이기적이고 흉한 모습이야.’ 하는 생각으로 증오의 감정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명상수행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서 이것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은 딱 한 마디만 하셨습니다. “그 사람 참 시원했겠다!” 충격이었습니다. 오랜 증오가 즉시 떨어졌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려는 마음을 단 한 번도 내지 못한 것입니다. 노상방뇨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 사람이 느꼈을 시원함에 대해 상상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내 입장에만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 집으로 가는 길에 푸성귀를 놓고 파는 할머니를 늘 볼 수 있었습니다. 늦은 시각까지 쪼그리고 앉아 장사하는 할머니를 보며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 모습을 안 보려고 일부러 다른 길로 가기도 했고, 때로는 호주머니를 털어 나물을 다 사기도 했습니다. 명상 선생님께 또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의 답변입니다. “너 참 오만하다! 니가 뭔데 남의 인생을 불쌍하다 어떻다 마음대로 판단하지?” 그 말에 번쩍 깨어났습니다.


사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 시각에서 마음대로 할머니를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물을 팔아 자식들 공부시키며 만족스럽게 살고 계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할머니는 저보다 더 넉넉한 살림을 하면서 나물 파는 걸 소일 삼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저는 친구에게 좋은 시험정보를 줬어요. 친구는 그걸로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잘 봤고요. 그런데 저는 고맙다는 말까지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은근히 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면 피해 의식이 듭니다. 다시는 그 친구를 도와주지 않겠다 결심하면서도 피해 의식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까요, 이 사람의 친구일까요? 언뜻 보기엔 시험정보를 준 사람이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친구도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결과를 냄으로써 이 사람에게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결국 서로 주고받은 것이지요. 그런데 자신이 받은 것을 볼 수 없는 자기중심적 의식에서는 준 것만 집착하면서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이 사람이 친구에게 좋은 정보를 주었다고 하는 부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다는 것은 자신의 관점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아직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친구가 시험에 떨어지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친구에게 돌릴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자기중심적 호의는 위험합니다. 호의를 냈다는 것에만 빠져 대상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바라는 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원망과 분노를 쏟아냅니다.

 

위의 이야기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세상에 자신만, 자기 입장만 있는 듯한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듯 상대가 있습니다. 내 입장이 있듯이 상대 입장이 있습니다. 노상방뇨하는 사람이라고 입장이 없겠습니까? 혹시 그런 사람에게 무슨 입장이 있겠는가, 입장을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하는 폭력적인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나요? 나물 파는 할머니를 내 식으로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상대의 삶에 관심이 없으면서 자비심이라는 내 것을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피해 의식을 품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관점에만 빠져 친구 방향에서 자신에게 오는 것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바른 의식에서는 나와 상대를 같은 위치에, 같은 무게로 놓습니다. 이 의식으로 움직일 때 상처나 잘못이 생길까요? 상처나 잘못이 없는 속에 당연히 용서도 없습니다. 평상시 건강을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건강 회복을 위해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가볍게 운동하며 삶을 즐기면 됩니다.

 

 

6. 용서라는 외길


앞에서 용서가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아직 용서가 필요한 단계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용서가 있어야 적절할까요? 예를 들어, 어제 어떤 사람이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했다고 합시다. 오늘 그 사람을 또 만나야 합니다. 이때 어떤 마음이 들까요? 불편함, 닫는 마음, 똑같은 것으로 받아치고 싶은 마음 등이 일어나겠지요. 그래서 일어나는 마음처럼 행동했습니다. 행복하신가요?


상대가 낸 것을 따져서 내가 낼 사랑과 용서의 무게를 결정하는 것은 나를 위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어제 상대가 무엇을 했든 오늘 만날 때는 , 새로운 모습으로 한 번 만나볼까?’ 하는 설레는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삶은 관계가 전부입니다. 매 순간 가슴을 열어가는 선택을 할 때 행복하고 편안해집니다. 용서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 외길을 걸을 때 다른 사람은 모를지라도 자족감으로 가슴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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