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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선()은 무엇이며 또한 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의식이 지어낸 이원론의 세계에서 각자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비록 그것이 상대와는 다를지라도 자신만의 사실 속에서 자신이 믿는 정의의 개념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삶에서 상대와 다름을 먼저 인식해야합니다. ‘저 사람과 나는 다르구나. 저 사람이 보는 세계와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구나를 받아들여야합니다.


우리는 상대와 다르기 때문에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관계성에서 상대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상대를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몇 십 년을 같이 산 부부도 때로는 전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관계에서 상대를 모르면 우리는 알려하고, 질문하고, 경청하고, 자신 것을 표현하고, 나누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어릴 때부터 배운 옳고 그름, 맞고 틀리고, 잘하고 못하고, 해야 한다 하지 않아야 한다,... 등등의 개념과 관념으로 인해 상황에 따른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상황에 맞지 않는 반응들은 우리의 감정과 에너지를 닫히게 만들거나 생각을 왜곡된 방향으로 이끌게 됩니다. 심리 치유는 우리 내면에 있는 막힌 에너지와 감정을 흐르게 하는 과정입니다. 어린 시절에 겪은 심한 두려움이나 수치심, 죄책감, 버림받음의 경험들이 우리 안에 간직되어 이런 에너지의 막힘 현상을 초래합니다.


치유는 우리 안에 만나지 못하고 눌려 놓았던 수치심이나 두려움의 에너지를 다시 흐르게 합니다. 막힌 에너지를 다시금 흐르게 해줄 때 뭔가 흘러버리는 느낌과 함께 열리고 통합된 어떤 느낌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치유되지 못해 막힌 에너지는 대부분 심리적으로 밖을 향해 투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의 불안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은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여 자신에게 불안을 느끼게 하는 모든 사람을 배척하거나 회피하게 됩니다.


삶에서 상황들은 그냥 인연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 , 이렇게 해야 하느냐 저렇게 해야 하느냐는 것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면 그냥 적절한 반응만이 있습니다. 옳음과 그름이라는 분별과 개념 속에 빠질 때 우리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악()입니다.


관계성은 우리내면의 흐르지 못하고 억압되어 있던 에너지들을 드러나게 합니다. 우리 안에는 오랜 세월 누적된 업식의 에너지와 습관의 에너지, 관념적인 에너지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무의식적인 에너지들은 관계성에 들어서면 자동적으로 툭 튀어나옵니다. 자기 안의 업식의 에너지는 인()이 되고, 관계성에서 상대와 환경은 연()이 되어 새로운 과보(果報)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인연과보의 법칙이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고통의 밑바닥에는 조건을 만드는 연()과 업식의 씨앗인 인()이 들어 있습니다.


생활명상은 삶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연과 과보를 탐구하여 우리가 지어내는 고통의 뿌리를 제거하는 수행입니다. 모든 괴로움의 뿌리에는 무지(無知)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음에 빠져듭니다. 지혜로움으로 세상을 비춰보면 관계란 결국 불교의 연기(緣起)와도 같습니다. 이것과 저것이 어울려 새로움이 창조 됩니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이라거나 저것이라는 어떤 하나의 고정된 실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이것과 저것의 만남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 착각하여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괴로움을 만들게 됩니다. 동일시는 어떤 것을 실체로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심리치유에서는 억압된 에너지의 실체를 인정하여 그것을 다시금 흐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명상의 영역에서는 그 모든 것을 실체 없는 무명(無名)의 착각으로 봅니다.


우리의 실체는 의식자체입니다. 의식의 특성은 대상을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작용이라 합니다. 외부의 대상과 환경은 의식을 끌어당기려합니다. 의식이 대상에 너무 집중되거나 몰입되면 인식의 느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때도 물론 대상과 의식이 합일이 일어나지만 이런 합일은 의식자체의 합일이 아닌 대상에 빠진 합일이 되어 의식은 본래의 자신을 잃게 됩니다.


생활명상은 알아차림으로 대상에 물들지 않는 마음을 기르는 공부입니다. 모든 대상은 알아차림의 배경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거품이나 환영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실체가 알아차림의 배경임을 놓쳐버릴 때 우리는 대상에 쉽게 함몰되어 익숙한 업식으로 빠져 들어가서 그것이 만든 혼란을 실재의 세상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모습입니다.


모든 고통의 뒤에는 어리석음의 혼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지할 때 우리는 놓아야 할 것을 붙들려 애쓰고, 흘러야 할 때 흐르지 못하고 머물려합니다. 지혜는 모든 놓음과 붙잡을 것이 없는 그 자리에 머무름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관계성이 만든 인연의 모습들입니다. 그러기에 관계가 변하면 인연이 변하고, 인연이 변하면 우리가 누구라고 주장하는 그것 자체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을 '지혜'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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