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제목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미국에서 온 변님의 소식....

조회 수 608 추천 수 0 2016.08.19 09:12:31
안녕하세요 법인 성원 선생님, 저는 미국에 잘 도착했습니다.
참 적절한 시기에 또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대구에 있으면서 편하게 뒹굴 수 있는 곳이 있어서도 너무 좋았구요ㅎ 역시.. 혼자서 할 수 있다는건 제 착각이었던 것 같더라구요.. 앞으로도 간간히 일지 보내고 가르침 받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처음의 마음

지난 여름, 미국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그간 센터를 다니고 발리 여행을 다녀오면서 형성된 나를 알아가는 흐름으로 나날이 가벼워지고 행복한 삶을 살고있었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낯선 형상에 들떠있었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삶을 이루어간다는 흥분에 벅차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힘은 빠지고, 내 일상은 익숙함에 젖어갔다. 자유로움은 대책없는 방종이 되었고, 새로운 곳에서의 일상은 내 오랜 업식에 따라 다시 낡아졌다. 무엇을 잘못 했을까?



# 물질과 성취보단 관계

조금은 고립된 삶을 살아가다 대구를 다녀와 보니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나와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인 것 같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덜 중요하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연구도 학위도 물질도 외부도 아니다. 센터에 계신 선생님들의 가르침, 그를 통해 만나는 나의 모습,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 연정이,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이다. 삶의 행복은 사랑하는 것에서 나오며, 이는 관계를 통해서만 겪을 수 있다. 그것이 미국에서의 삶이건 대구에서의 삶이건 상관 없다. 대구의 23만원짜리 월세 방이건 미국의 마당 딸린 하우스건 겉보기 형상이 다를뿐 나의 행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서 삶의 겉모습만 아름답고 능력있게 꾸미는 것은 헛 일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형상도 형상이고 추한 형상도 형상이라 하지 않던가?



# 꿈

여기서 일 년을 보내고 대구로 돌아가보니 미네소타에서 보낸 지난 한 해가 꿈만 같더라. 긴 꿈을 꾸고난 뒤, 결국 내가 속한 곳은 대구라는걸 얘기라도 하듯 대구에서의 일상은 자연스러웠고, 그리운 관계와 상황들도 힘 들이지 않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 반대로 내가 미국으로 돌아오니, 이 곳의 모든 것은 또 내가 떠나기 전 그 자리에 있다. 날 반갑게 맞아주는 규성이 형, 코타의 예쁜 집과 내 방, 덜컹거리는 낡은 도요타, 연구실의 사람들 등, 여기서 일구어놓은 나의 삶이 또 현실이고 대구에서 있었던 일은 꿈인 것만 같다. 


사실 모든 것은 꿈이라 한다. 내 기억과 익숙함, 그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집착만이 ‘나’라는 형상을 유지하고 있을 뿐, 모든 것은 내 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이라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널뛰다 보니 이 모든게 ‘꿈’이라는 것이 조금은 더 와닿는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리얼한 문제들이 이제 돌아와보니 없다. 결국 내 의식의 문제였던 것. 그 때 찾아 헤매던 연구의 의미같은 것도, 고립 같은것도 이제 보니 없는 것 같다. 난 그저 어떠한 인연에 따라 이 곳에 있게 된 것이고, 어디에 있건 삶은 온전하게 흘러갈 것이다.



# 일

센터에서 피피티 작업을 했던 일이 생각난다. 일이 보이고 내가 할줄 아는게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한건데, 그 느낌이 좀 낯설었다. 그 일을 통해 도달해야할 어떤 곳도 없었고 이루어야할 거창한 목표도, 명확한 데드라인도 없었다. 그저 일이 있고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니 한 것인데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어 좋았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 할 일도 연구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느니 하는 것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니 하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어 하고, 날 먹여 살리니 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고민을 해서 거창한 연구의 의미같은걸 수립해봤자 그럴듯한 말 장난이고 허상일 뿐 아닐까.


연구를 해서 좋은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하는 것들은 세상에서 정해둔 룰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친척들이 내게 ‘변박사 왔다’면서 추켜 세워줘도 단지 껍데기에 대한 칭찬일 뿐이지 내겐 아무 의미 없지 않던가? 내가 좋은 논문 쓰면 남들이 박수 쳐주고, 좋은데 취직하면 또 박수 쳐 주겠지만, 그게 친척들의 칭찬 이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의 성취감과 뿌듯함도 그 때 뿐이지, 어떤 영속적인 의미가 있을까? 좋은 논문이란 것도 남들의 기준일 뿐, 그리고 나의 ‘좋다’는 상일 뿐. 현실의 부족감도 허상이고 열심히 노력해서 되려하는 모습도 허상이다. 일도 지금 하는 것이고 삶도 지금 사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저희 홈피를 찾아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5] 관리자 2008-03-24 77553
공지 <나를 꽃피우는 치유 심리학>이 출간되었습니다. imagefile [5] 성원 2009-12-21 8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