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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향님의 고해

조회 수 4181 추천 수 0 2009.04.27 18:30:56
얼마전 캐나다에 간 친구와 네이트로 대화를 하는데 그곳에 가서 살이 5키로나 빠졌다고
자랑을 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사실 그 친구는 애기를 놓고 찐살이 빠지지 않았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기도 했었다.
그리고 신랑도 좋아해서 넘 흡족하다고 그랬다.
내 친구 신랑이 돼지라고 자주 놀려대서 존심이 상했었는데. 이제 날씬해져서
넘 좋다고 그랬다. 나도 친구한테 축하한다고 그랬다.
그 심정을 알기에..


난 고등학교때 몸이 안 좋았다.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1등을 할만큼 공부도 잘했었고. 친구관계도 좋았고.
그랬는데...
중학교 3학년때부터 시작되어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생리를 계속했었다.
여자들은 알리라. 생리를 일주일씩해도 불편한데 그것을 일년반동안 했으니.
머리도 많이 빠지고 성적은 날로 떨어지고 매일매일이 우울했다.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꾸면 그 시절 힘들었던 때가 재연된다.
날 보살펴주는 부모님은 없었다.
부모님은 맨날 싸웠다. 아빠가 고모부와 동업을 했는데 공장이 부도가 나고
아빠는 그것을 엄마탓을 했다.
한번씩 술먹고 들어오면 집안은 정말 개판이 되었고. 엄마는 옆집으로 도망가고 다음날
아침이면 눈이 퉁퉁부은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은 고통이었다.
동생과 나는 침울해져갔다.

나는 어렸을때도 놀이터삼아 교회에 다녔지만 그런 나날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뜻이
있겠지 하면서 생각하던 차에 학원을 마치고 집에가던 중 집근처 건널목에서
전도를 하는 자매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자매님의 전도로 나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그 타이밍에 맞쳐서 나는 파티마병원에 가서 내 생리문제도 고치게 되었다.
그러자 나의 종교심은 더 깊어져갔다.
그 교회는 흔히 말하는 종말론 교회였지만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믿고
열심히 전도했으며 대학도 포기했다.
물론 부모님한테는 다닌다고 해놓고서는 등록금까지 교회에 갖다 바쳤다.
하지만 그 열정도 잠시 스무살이후로 마음이 뭔가 힘들었고
증산도에 심취해있던 아저씨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듣던 중
갑자기 하나님이 어디계신지 정말로 계신건지 의문이 생겼고
그것은 또 증폭되었다.

교회에서는 시험걸렸다고 나에게 금식기도를 권하였다.
나는 금식을 여러번 했다. 물도 먹지 않는 금식기도를 삼일. 이틀.
결국나는 제풀에 지쳐서 나왔다.
나오면서 너무나 힘들었다, 교회가 집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밖에 나오는 것도 두려웠다.
다시 수능을 보아야 하고 대학에도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일년동안을 거의 폐인처럼 지냈다.
다시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했다.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와야했기에.
다시 공부해서 물리치료학과에 야간에 들어갔다.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밤에는 공부했지만 또 남보다 3년늦게 들어갔지만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학기 마치고 단짝같이 지냈던 동갑부산친구는 학교를 그만뒀다.
나는 외로웠고.다시금 교회를 찾았다
다시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이교회. 저교회. 교회 수련회 등등 다녀봤지만
나에게 죄인임을 시인하라는 .그들의 교리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왜 죄인인가? 하는 반발심이 생겼고. 너무 고통이었다.
수업도 다 빼먹고  기말고사를 다 백지로 내 버렸다.

예전처럼 하나님께 다 맡기고 편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도 모르겠고. 정신적인 공황상태까지 갔다.
도서관에서 이책 저책 보다가 오쇼 라즈니쉬 책을 보게 되었다.
오쇼를 단숨에 내려갔다.
정말 내가 원하는 답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았다.
기독교에서 어느정도 해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고. 단식을 하던 것이 나중에는 폭식으로 이어졌다.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었다.
살은 계속 쪘고 사람들에게 나의 살찐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동네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도 넘 싫었다.
부모님도 나 때문에 많이 울었다.
니가 왜 그러냐고
살도 찌고 외모도 엉망이 되었다.
나는 연하게 졌던 쌍꺼풀마저 지워지고
나는 넘 불안했다. 두려웠다.
내가 다 망가지는 기분. 정신도 무너져 내리고 이젠 외모마저  다 망가지는 구나.
미용실에서 우연히 잡지책을 보다가 성형수술 광고를 봤다.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었다. 외모라도 온전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또 올가미가 되었다.
오쇼를 통해서 진리를 무엇인지 궁금해졌지만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겠던 마음은 나를 더욱더 부정적으로 몰고 갔고
자신감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성형수술한 것도 나중에는 후회하게 되었다.
내가 가짜같다는 느낌도 들고 그것이 또 자기부정으로 몰고 갔다.

그래도 인정받는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보니. 내 이상과는 너무나 괴리가 심한 현실이었다.
나는 터무니없이 이상만 쫒았고. 하루하루가 넘 고통이었다.
물리치료할때도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진리에 대해 모르는 마음은 다른 것들의 연장선이었다.
그러다 신랑을 실장님 소개로 만났다.

나의 이상형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나의 모르는 마음을 채워줄수 있는 어떤 사람...
울 신랑은 지금도 내가 인정한다.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하지만 가진거 없는. 이것 저것 하다가 떨어먹은 것도 많지만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다.
나랑 7살차이가 나지만 부모님같기도 하고 편안했다.
내가 이제껏 마음을 많이 열어보인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언제나 불안한 사람이었다.
결혼은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사고쳐서 결혼을 했다.

결혼생활을 나에게 더 갑갑함을 주었다.
우선 경제적으로도 넘 힘들었다.
자기집이 부자라고 해놓고선... 그건 과거에 일이지.
시누가 장사를 해서 생긴 빚이 2억이라고 한다.
그걸 울 시댁이 다 갚아줘서 돈이 하나도 없었다.
울 신랑도 벌어놓은 돈이 하나도 없었다.
월세부터 시작한 살림. 처음엔 막연히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애기 키우고 일하고. 그리고 시댁의 섭섭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결혼전엔. 내 마음대로 했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돈벌어야하고. 애기키워야하고.
우울증이 생기고 여기 센터에 와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원장님하고 상담하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하지만 그건 애기 낳는 고통보다 더 한 것이였다.
지금은 그나마 차츰차츰 최면에서 빠져나오고 있지만
정말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인정받길 바랬다.
나는 잘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내 자신과 하나님과 만나고 싶어하는지

다시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다.
고통스러웠던 나날들..
혼자 방황만 했던 나날들..
다시 예전처럼 산다면 정말 죽고 싶다.

말이 길어졌다. 횡설수설 했다.
하지만 한번은 이렇게 정말 있는 그대로 속시원히 말하고 싶었다.
나 원래는 정말로 초라한 사람이였어라고.
지금도 초라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이 모든게 다 두려움때문이였다고 고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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