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있건든 외로움을 격려해 보라.
외로움아, 빛나라 라고.
허무함이 있건든 허무함을 격려해 보라.
지금 네가 있으니 이세상은 너의 무대라고.
마음껏 춤추고 존재하라고.
또한 미움이 있건든 미음을 격려하라.
괜찮다고 그렇게 있어도 된다고.
사랑받아야 하는 것은 미워하는 대상이 아니라,
미움이기에
내면에 부정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움을 누르고 사랑하려 하지 마라.
화를 누르고 온화하려 하지 마라.
허무를 누르고 열정을 바라지 마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로뤄지려 하지 마라.
미움이 허용 될 때 미움과 함께 사랑이 있다.
화가 흐를 수 있을 때 화와 함께 온화함이 있다.
허무가 인정 될 때 허무와 함께 열정이 있다.
어리석음이 존중 될 때 어리석음과 함께 지혜로움이 있다.
두려움이 두려움으로 있을 수 있을 때
두려움과 함께 용기가 있다.
때문에 내면에 부정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엔 단 두가지의 현실이 있을 뿐이다.
잠들어 있는가, 깨어 있는가.
미움이 있을 때 미워하는 자가 되면 잠든 것이다.
화가 있을 때 화나는 자가 되면 잠든 것이다.
허무가 있을 때 허무한 자가 되면 잠든 것이다.
어리석음이 잇을 때 어리석은 자가 되면 잠든 것이다.
두려움이 있을 때 두려워 하는 자가 되면 잠든 것이다.
미움이 있을 때 미움이란 그러함이 있음을 알면 깨어 있는 것이다.
화가 있을 때 화란 그러함이 있음을 알면 깨어 있는 것이다.
허무가 있을 때 허무란 그러함이 있음을 알면 깨어 있는 것이다.
어리석음이 있을 때 어리석음이란 그러함이 있음을 알면 깨어 있는 것이다.
두려움이 있을 때 두려움이란 그러함이 있음을 알면 깨어 있는 것이다.
잠이란 '그러한 나'를 꿈꾸는 것이다.
깨어남이란 '그러함'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함'이란 평생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되고자 애써 왔던
잠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니 마음에 무엇이 일어나든 격려하라.
드러났으니,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온전히 너 자신으로 존재하라고 격려하라.
그렇게 마음과 함께 있으라.
그렇게 마음에 드러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겪으라.
그러면 드러날 것이다.
신뢰라는 이름의 신성이.
아, 그것이 무엇이든 그냥 잇는 그대로 경험해도 되는구나!라는 마음에 대한 신뢰가.
굳이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자유로움이.
그리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이란 직접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도 몰래 피워오르는 꽃이다.
있는 그대로여도 괜찮다는 신뢰.
그 꽃은 그 땅에서만 드러난다.
그러니 마음에게 다가 앉으라.
있는 그대로 함께 앉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마음이니.